에어비앤비가 한국 시장에서 ‘불법 공유숙박 퇴출’이라는 정책을 도입한 것은 한국에서 이른 시일 내 공유숙박 규제가 완화될 가능성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는 한국 정부에 공유숙박 규제 완화를 촉구해왔지만 이에 앞서 한국의 규제를 먼저 지키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에어비앤비는 석 달 뒤인 10월부터 기존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공유숙박 업소 중 영업신고증을 갖춘 곳만 자사 플랫폼에서 영업할 수 있도록 조정한다. 에어비앤비는 일 년 전 이 정책을 공개하고 플랫폼에 입점한 호스트(집주인)에게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으로 등록해 합법적으로 운영하도록 유도해왔다.
에어비앤비의 이 같은 기조에도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으로 등록해 신고증을 받은 합법 숙소의 비중은 여전히 낮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전국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으로 등록된 업소는 8534곳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7198곳)보다 1336개 늘었지만 에어비앤비가 한국 시장에서 중개하는 공유숙박에 비하면 11% 수준에 그친다. 업계는 지난해 기준 에어비앤비가 한국 시장에 중개해주는 7만 2400여 개의 숙소 중 절반가량을 아파트 등 공유숙박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중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으로 등록해 영업신고증을 제출한 합법 숙소는 절반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외국인 관광객의 공유숙박 이용이 활발한 서울 용산구·중구·종로구의 구청 관계자들은 에어비앤비의 바뀐 정책 시행이 3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 등록을 신청하는 업소들이 예년 대비 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유숙박을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드문 것은 한국에만 적용되는 규제 때문이다. 현행법상 국내에서 공유숙박을 하려면 집주인은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에 등록해야 하는데 이때 집주인은 반드시 해당 숙소에 실거주해야 한다. 집주인이 자신이 거주하는 주택을 이용해 외국인에게 한국의 가정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숙식을 제공하는 것을 법의 취지로 명시한 탓이다. 또 관광진흥법 시행령에 따르면 오피스텔은 아예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이 불가능하다.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오피스텔 공유숙박이 인기인 점을 고려하면 현실과 규제가 동떨어진 셈이다.
지방자치단체의 한 관계자는 “에어비앤비 정책에도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 신청이 늘지 않는 건 오피스텔과 같이 아예 영업신고증을 확보할 수 없는 불법 업소들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 아파트·다세대주택 등 공동주택 역시 공유숙박으로 활용하려면 인접 세대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규정이 있다.
그간 정부는 공유숙박 규제 완화를 추진해왔으나 호텔·모텔 등 기존 숙박 업소의 반대에 막혀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했다. 규제 완화 논의가 실종된 사이 불법 공유숙박이 에어비앤비 외에 다른 글로벌 온라인여행사(OTA)로 확산될 움직임도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에어비앤비에서 빠져나간 불법 공유숙박들이 부킹닷컴·트립닷컴으로 옮겨가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한국의 규제가 실질적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 규제 전반에 대해 정부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역대 최대인 20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공유숙박 관련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5월까지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720만 명이다. 하반기 중국인 단체관광객에 무비자 입국 정책까지 시행되면 방한 외국인 관광객은 더욱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돼 외국인 관광객의 숙소 대란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서원석 경희대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이미 서울 주요 관광지 인근에서는 성수기 숙박시설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데 에어비앤비에서 불법 숙소가 퇴출되면 숙박 부족 문제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현 규제 아래에서는 양질의 숙소조차 신고하기 매우 까다로워 제도권 내에서 관광 수요를 흡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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