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쌀값 대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오랜 기간 우하향 곡선을 그리던 국내 쌀값이 최근 급등세를 나타내면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와 일본이 △쌀 중심 농업 구조 △정부 보조금 의존 △농협 중심 폐쇄적 유통 구조 등 유사한 측면이 많아 쌍둥이형 쌀 대란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57.1%나 뛰어오른 일본 쌀값 급등의 이면에는 일본의 농협인 JA전농(전국농업협동조합연합회)이 만들어 낸 폐쇄적 유통 구조가 있다. 실제 지난해 2월 기준 일본 정부가 시장에 방출한 비축미 21만 톤 가운데 20만 톤을 JA전농이 낙찰받았지만 이 가운데 출하된 물량은 5월 기준 6만 3000톤으로 32%에 그쳤다. 여기서 시장에 유통된 물량은 4179톤에 불과했다.
일본의 쌀 유통은 1970년대까지 JA전농이 사실상 독점해왔다. 특히 정부 비축미는 입찰 방식으로 JA전농을 중심으로 유통되고 있다. 일본 쌀은 지역 농협에서 집하된 뒤 JA전농을 거쳐 도매상과 소매 업체로 유통된다. 유통 단계마다 물류비와 유통 마진이 붙는다. 쌀값이 오르면 JA전농, 정부 비축미를 JA전농에 넘기는 농림수산성, JA전농 조합원들을 주요 지지층으로 잡고 있는 자민당 농림족이 모두 이득을 보는 구조다. 도쿄에서 만난 한 일본 농업계 관계자는 “일본 정부는 농업정책을 진행할 때 농협을 손발로 사용해왔다”며 “대신 농협에는 국가 보조금이 흘러가는 형태로 ‘농정 단일체’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은 쌀값 인상의 원인으로 JA전농 중심의 유통 구조를 지적하며 JA전농에 대한 개혁 의지를 밝히고 있다. 고이즈미 취임 직후인 5월 일본 정부는 정부 비축미 30만 톤을 JA전농을 거치지 않는 직거래 방식으로 풀었다. 쌀값은 5㎏에 4000엔에 육박했으나 5월 풀린 비축미 가격은 2160엔 수준으로 절반 가까이 인하됐다.
문제는 한국 쌀의 유통 구조도 일본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각 농가가 생산한 쌀이 지역 농협 산하 미곡종합처리장(RPC) 혹은 민간 RPC를 거친 뒤 도매상을 통해 소매 매장으로 유통되는 단계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농협이 쌀값을 올려 받으면 소매가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실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14일 기준 쌀 20㎏의 소매가격은 5만 9759원으로 6만 원 선에 다가섰다. 이는 전년 동기(5만 3057원)에 비하면 12.63% 올랐고 평년(5만 1788원)에 비하면 15.39% 오른 값이다. 유통 업체에서 판매하는 쌀 20㎏ 가격은 이미 6만 원을 훌쩍 넘겨 7만 원에 달하는 곳도 있다. 이 같은 쌀값 오름세의 배경에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농협의 유통 구조가 있다고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최근 쌀값 오름세에 놀란 농림축산식품부는 정부 보유 양곡을 시장에 푸는 공매 조치를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렇다고 일본 농협에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 농협 중심의 경쟁 체제 등 거버넌스 측면에서는 도리어 우리나라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이는 2015년 일본 아베 신조 정권 당시 실시한 농협 개혁 덕분이다. 아베 정부는 JA전농이 갖고 있던 지역 단위 농협에 대한 지도감독권을 없애 지역 농협들이 개별적으로 합병 등을 거쳐 규모화를 추진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에 따라 현재 일본의 지역 농협은 2000년 1424개에서 2020년 기준 584개로 감소한 상태다. 반면 한국의 지역 농협은 2000년 1383개에서 2025년 기준 1111개로 여전히 영세한 조직이 난립하는 상태다. 지역 농협이 운영난을 겪어도 농협의 신용 사업을 통해 이익을 보전할 수 있어 자체적으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동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김동환 농식품신유통연구원장은 “한국의 농협은 금융 사업을 갖고 있어 중앙회를 통해 수익을 나눠주는 구조이다 보니 경영 위기가 와도 버틸 수 있다”며 “영세 조직 간에 합병이 이뤄지기도 힘들고 영세한 구조가 계속되면 수급 조절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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