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시설 공습으로 이스라엘·이란 간 휴전을 성사시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동 재편 구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21년 만에 시리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대부분 해제하는 등 ‘아브라함 협정’의 외연을 확장해 미국·이스라엘 중심의 중동 질서를 새로 짜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친이스라엘 정책에 반발해 반유대주의 정서가 확산하는 등 역풍도 만만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30일(현지 시간) 시리아에 대한 제재 대부분을 해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2004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바샤르 알아사드 전 정권을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하며 제재를 부과한 후 21년 만의 해제 조치다. 미 재무부는 “시리아 경제의 글로벌 복귀와 외국인 투자 유치를 기대한다”며 시리아 정부 및 국영기업과의 거래를 전면 허용했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5월 중동 순방 중 예고한 것으로, 당시 그는 시리아 임시정부를 이끄는 아흐마드 알샤라 대통령과 회담하고 재건 지원을 약속했다. 알샤라 대통령은 과거 알카에다 계열 무장 조직인 하야트타흐리르알샴(HTS)을 이끌고 알아사드 정권을 축출한 인물이다. 미국이 알샤라 정권을 공식 인정한 것은 외교정책의 급격한 전환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조치를 계기로 아브라함 협정의 외연 확장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이 시리아와의 협력을 통해 협정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2020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주도한 아브라함 협정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 국교 정상화를 이끌었지만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
그러나 최근 시리아에 친미 정권이 들어선 데 이어 이란 핵시설 공습과 이스라엘·이란 간 휴전이 이어지며 협정 재추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여기에 중동의 또 다른 뇌관이던 가자지구 전쟁도 휴전 국면에 접어들면서 중동 지역의 불씨가 일시적으로 진정되는 분위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스라엘군은 이미 가자지구의 75%를 점령한 상태다. 여기에 이란 공습 이후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입지 강화로 이스라엘 정부는 외교적 전환에 나서는 모습이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부는 시리아 및 레바논과의 국교 정상화 가능성을 공식 언급하며 아브라함 협정 확대 의지를 드러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7일 네타냐후 총리와 회담을 갖고 가자지구 휴전, 이란 핵 협상, 아브라함 협정 확대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으로 알려져 결과가 주목된다. 그는 6월 27일 기자들에게 “다음 주 중 가자 휴전이 있을 것 같다”고 말해 회담 성과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다만 트럼프의 친이스라엘 외교가 고립을 자초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트럼프 외교에 대한 반작용으로 반유대주의 정서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주요국에서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0~70%가 이스라엘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시설 공습에 참여한 B-2 스텔스 폭격기 조종사들을 4일 열리는 독립기념일 백악관 행사에 초청했다. 이란 공습의 성과를 재차 부각하고 ‘이란 핵시설이 완전히 파괴됐다’는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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