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증시에서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의 시가총액이 전통 강자인 자동차를 사상 처음으로 역전했다. 미국 관세 부담과 중국발 전기차(EV) 저가 경쟁 등이 몰아치면서 시장 주도주가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달 30일 기준 일본의 주요 엔터테인먼트 기업 9곳의 시가총액이 57조 2000억 엔(약 539조 13억 원)으로 올 들어 28% 늘었다고 보도했다. 같은 기간 자동차 업종은 18% 떨어진 56조8000억엔(약 537조 원)에 그치며 시가총액 1위 지위를 엔터테인먼트 업종에 내줬다.
신흥국의 소득 수준이 급격히 증가한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이후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즐기는 문화가 확산된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올 상반기 일본 콘텐츠의 해외 매출은 5조 8000억 엔(약 54조 6500억 원)으로, 전통 제조 산업인 반도체(5조 5000억 엔)와 철강(4조 8000억 엔)을 앞지른 상태다.
세계무역기구(WTO) 합의에 따라 디지털 콘텐츠는 관세 부과 대상이 아니라는 점도 성장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는 관측이다. 자동차 등 전통적인 제조 산업들이 중국에 쫓기고 미국발 고율 관세에 신음하는 상황에서 게임 소프트웨어와 영화 스트리밍 같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높은 영업이익률을 이어가고 있다. 헬로키티·시나모롤 등 다양한 캐릭터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하고 있는 산리오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올 상반기 기준 49%로 일본 주요 기업 중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 밖에 스트리트 파이터 등 게임을 개발한 캡콤은 23%, 건담·디지몬 등의 IP를 가진 반다이남코는 17%로 주요 자동차 기업 9곳의 평균(7%)을 크게 웃돈다. 시장 성장 기대를 반영하는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은 산리오 39배, 닌텐도 53배로 미국 인공지능(AI) 기업인 엔비디아의 36배보다도 높다. 코몬즈투자신탁의 이이 테츠로 사장은 “산리오를 상위로 두고 많은 엔터테인먼트 종목을 추가했다”며 “과거 자동차 산업처럼 엔터테인먼트도 외화를 벌어들이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자동차 업종은 하락세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높은 기술력과 낮은 가격으로 시장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미국 시장에서 25%의 품목관세를 때려 맞으며 경쟁력이 떨어진 탓이다. 세계 1위 완성차 기업인 도요타는 올 상반기 기준 시가총액이 21%나 쪼그라들었다. 경영난으로 자국 내 공장까지 감산에 들어간 닛산도 시가총액이 반년 새 27%나 줄어든 데다 ROE까지 마이너스로 돌아서며 침체를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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