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약·바이오 업계에 한미약품(128940) 출신들이 창업하거나 이직하면서 ‘LG사단’에 이어 ‘한미사단’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한미약품의 울타리를 벗어나 신약개발을 통해 '연구개발(R&D)의 한미약품' 명성을 이어나가거나, 풍부한 해외 사업 경험을 살려 기술수출·허가 업무 등 노하우를 전수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LG생명과학(현 LG화학(051910)) 출신들이 알테오젠(196170)·리가켐바이오(141080) 등 현재 바이오업계 톱 레벨 기업을 이끌고 있는 것처럼 한미약품 출신 인사들도 업계의 발전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안구건조증 신약 '레코플라본' 임상 3상에 성공한 지엘팜텍(204840)의 경영진은 한미약품 출신들이다. 한미약품에서 제제연구센터를 이끈 김용일 대표가 연구총괄 맡고, 품질 및 생산 담당한 진성필 대표가 경영총괄을 맡고 있다. 특히 김 대표는 20년 넘게 한미약품에서 근무하며 제제센터장을 역임한 제제 R&D 전문가로 고혈압 치료제 '아모잘탄'과 고지혈증 치료제 '로수젯' 등 한미약품의 대표 개량신약 개발을 이끌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미약품 출신 인재들이 지엘팜텍에 합류하면서 안구건조증 신약 개발에 속도가 붙어 가시화된 성과가 나올 수 있었다"며 "앞으로 지엘팜텍의 개량신약 개발 역량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엘팜텍의 최대주주인 의약품 제제기술 연구 및 개발 기업 더블유사이언스의 우종수 대표 역시 한미사단이다. 한미약품에서 33년간 근무하며 대표까지 역임한 우 대표가 설립한 회사로 약물전달시스템(DDS)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우 대표는 한미약품의 개량신약 전성기를 이끈 약물 제제연구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그는 더블유사이언스의 개량신약·복합신약 성과를 앞당기기 위해 지난해 3월 지엘팜텍을 인수하고 한미 출신 인재 영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엘팜텍은 현재 더블유사이언스가 지분 30%와 함께 경영권을 보유했다.
이관순 전 한미약품 부회장은 신약개발 및 라이센싱 전략 종합 컨설팅 기업 '지아이디(GID) 파트너스'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신약 개발 로드맵 수립·독성 시험 설계 등 R&D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미팅 주선 등 사업개발 영역까지 지원한다. 이 대표는 한미약품에서 1984년부터 2023년까지 근무하며 신약 개발을 주도해 ‘R&D의 한미’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GID 파트너스의 신약 디스커버리·전임상 개발·사업 개발·상업화 전략 등을 담당하는 주요 임원진들도 한미약품 출신들로 구성했다.
이중항체 기반 면역항암제 개발사 '머스트바이오'를 이끌고 있는 김맹섭 대표도 한미약품 연구소장 출신이다. 김 대표는 한미약품 연구소장으로 근무하면서 아모디핀·아모잘탄 등 개량신약 개발과 이중항체 바이오신약, 자가면역질환 신약, 표적항암제 등의 연구개발을 주도했다. 권세창 차바이오그룹 R&D 사업화 총괄 부회장도 한미약품에서 26년간 근무한 신약개발 전문가다. 그는 한미약품에서 호중구감소증 치료제 ‘롤론티스’ 상용화와 약물전달기술 플랫폼 ‘랩스커버리’를 개발하는데 기여했다.
업계에서는 현재 국내 바이오텍 톱 레벨 기업을 창업해 이끌고 있는 LG사단처럼 한미사단의 영향력도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LG그룹이 2000년대 초 항암·항체 관련 사업을 접으면서 연구원들이 대거 바이오기업을 창업했다. 박순재 알테오젠 대표, 김용주 리가켐바이오 대표, 고종성 제노스코 대표 등이 LG사단으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LG화학과 달리 한미약품은 연구소 인력보다는 해외사업·비즈니스 등을 담당하는 인력들이 빠져나간 게 특이점"이라며 "경영권 분쟁 당시 연구소보다 본사 중심의 조직 변경이 많아서 이에 대한 반발로 창업하거나 이직을 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LG사단이 연1회 ‘LG 오비(OB)모임’을 갖는 것처럼 한미 사단도 오비모임을 가지며 네트워크를 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약품은 2015년 이후 대규모 기술수출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업계에서 글로벌 노하우가 가장 많은 곳으로 평가받는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미약품에서 기술수출·허가 업무·공장관리 등을 담당하며 해외 사업 경험이 풍부한 인물들에게 중소형제약사 또는 바이오벤처에서 러브콜이 많이 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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