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인 인수합병(M&A)전략으로 도약한 중견기업들이 대기업 문턱을 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막대한 현금자산을 무기로 대규모 인수에 나섰지만, 적자와 상장폐지 위험에 시달리거나 일부는 회생 신청을 하는데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기존 사업과 연결고리가 낮은 데다 인수 후 대규모 투자와 인력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룹사에 안정적으로 편입되기까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KG, 글로벌세아, 호반, 타이어뱅크 등 주요 중견기업 5곳이 지난 2018년부터 5년간 5조 6921억 원을 투자해 한온시스템 등 15개 기업을 인수했으나 이 중 8개 기업이 적자와 상장폐지 위기, 회생신청 등 저조한 실적을 나타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들 중견 그룹이 대규모 인수를 통해 일단 사세를 키우는데는 성공했지만 이후 견실한 경영을 하고 있는 지에는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가 지난해 11월 1조 7330억 원을 투입해 경영권(지분율 50.5%)을 확보한 공조기업 한온시스템은 업황 침체에 따른 실적 하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다. 한국타이어가 2015년 2대 주주가 되기 위해 투입한 1조 663억 원까지 고려하면 2조 8000억 원이 들어갔다. 그러나 한온시스템의 실적이 연결 실적으로 처음 반영된 올해 1분기 한국타이어는 영업이익 3546억 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1.1% 줄었다. 한온시스템을 인수하며 한국타이어는 재계 30위에 올랐지만 속빈 강정인 셈이다.
한온시스템 자체만 보면 매출은 2022년 8조 6277억 원에서 2024년 9조 9987억 원으로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565억 원에서 955억 원으로 떨어졌다. 한국기업평가는 “매년 6000억 원의 설비와 개발비 투자가 들어가는 반면 주요 거래처의 전기차 판매가 부진하고, 차입규모 확대로 이자부담이 가중돼 단기간 내 재무구조 개선은 어렵다”고 진단했다.
KG그룹 역시 동부제철(KG스틸)인수 당시에는 구조조정에 들어간 알짜 기업을 싸게 샀다며 M&A의 귀재로 불렸지만, 2022년 11월 9000억 원을 투입한 쌍용차(KG모빌리티)는 인수 직후 반짝 상승세를 보인 뒤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KG모빌리티는 2022년 1119억 원의 영업적자에서 2023년 125억 원 흑자로 전환하며 주목 받았다. 인수 직후 발표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토레스가 중형 SUV 판매 1위까지 찍으며 선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인기가 다소 식으면서 2024년에는 영업이익이 14억 원으로 감소했다. KG모빌리티는 회사채 등급이 부실채권에 해당하는 BB로 아직 쌍용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KG그룹은 그 밖에 KFC를 인수했다가 본사의 관여로 경영 자율성이 떨어지자 매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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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에서 시작한 글로벌세아는 중후장대 사업에 다각도로 투자했지만 일부 기업이 회생을 신청하는 악재를 맞고 있다. 대표적으로 해외 건설 시장을 노리고 2018년 7월 세아STX엔테크를 품에 안았지만, 2022년 당기순손실만 1034억 원에 달했고 결국 지난해 7월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아울러 글로벌세아는 2023년 12월 의류 배송과 연관이 있는 전주페이퍼를 인수했는데 2022년 115억 원이던 영업이익은 2024년 180억 적자로 돌아섰다.
최근 활발한 투자 행보를 보이는 타이어뱅크는 2024년 7월 인수한 항체 치료제 기업 파멥신이 지속적인 실적 부진에 상장폐지 위기에 내몰렸다.
타이어뱅크는 파멥신 인수 후 새 대표를 영입하고 알짜 자회사를 합병시키는 등 정상화 작업을 단행했다. 그러나 본업 실적은 여전히 저조한 채로 코스닥시장위원회의 상폐 심사를 앞두고 있다. 김정규 회장과 자녀들은 올 들어 의약품 유통 업체인 원풍약품상사도 사들였다.
특히 타이어뱅크의 최대 투자처인 에어프레미아 인수 과정에서 1000억 원에 달하는 잔금 납입 여부가 주목된다. IB 업계 관계자는 “에어프레미아 지분 매각 측에서 상반기 내 잔금 납입을 요청했지만, 타이어뱅크가 9월 말로 시기를 늦췄다”면서 “에어프레미아 인수 주체인 타이어뱅크의 AP홀딩스는 지난해 당기순손실 만 130억 원이어서 타이어뱅크의 지원 없이는 잔금 납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반그룹의 경우 인수한 대한전선·대아청과·삼성금거래소·서서울CC의 실적이 준수하다. 특히 전선업계 2위 대한전선은 영업이익이 2022년 482억 원에서 2024년 1151 억 원으로 급증했다. 다만 1위 LS전선과 지속적으로 기술 유출 논란을 벌이면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로 번지며 논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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