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버스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이 통상임금을 둘러싼 갈등으로 결렬된 가운데 올해 상당수 사업장이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임단협에서 서울시버스노조처럼 7% 이상의 임금 인상과 통상임금 적용을 동시에 요구하는 노조가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서둘러 임금체계를 개편해 노사 갈등의 소지를 줄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30일 서울시버스노조는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과 벌인 올해 임단협이 결렬돼 이날 하루 준법투쟁을 했다. 노사는 5월 8일까지 물밑 협상을 벌일 예정이지만 최종 합의는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양측 협상을 중재해온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더 이상 이견을 못 좁히겠다면서 이날 조정 중지를 선언했다. 노사가 노동위원회에 사후 조정을 신청하지 않는다면 노동위는 노사 협상에 개입할 수 없다.
서울시 버스 노사가 예년처럼 임금 인상률을 놓고 협상했다면 예상보다 빨리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지난해 협상에서 ‘12.7% 인상안’을 꺼냈던 서울시버스노조는 올해 ‘8.2% 인상안’으로 한 발 물러섰다. 게다가 지난해 노사는 노조 요구안의 3분의 1 수준인 4.48% 인상에 최종 합의했다. 최초 임금 동결을 주장했던 사측도 협상을 하면서 노조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올해 노사 협상은 지난해 ‘통상임금’에 발목이 잡혔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각종 수당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 인정 범위를 넓혔다. 노조는 바뀐 통상임금은 법원 판결이라며 올해 협상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반면 사측은 통상임금이 바뀌면서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인건비가 치솟은 상황을 적극 피력했다. 사측은 임금 인상분 8.2%와 통상임금 변경에 따른 임금 인상 효과를 합칠 경우 “노조가 20% 이상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서울시 버스 노사 사례는 올해 내내 다른 사업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의 ‘예고편’이다. 제1 노총인 한국노총은 올해 임금 인상 요구율을 7.3%로 정했다. 한국노총 소속 사업장은 임금 협상을 할 때 이 요구율을 가이드라인으로 쓴다. 한국노총 소속 서울시버스노조도 임금 인상 요구안을 8.2%로 정해 가이드라인을 준용했다.
한국노총은 앞서 소속 사업장 설문을 통해 요구율을 결정했는데 설문 시기는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 이후였다. 이는 상당수 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서울시버스노조처럼 7% 임금 인상과 통상임금 적용을 동시에 요구할 수 있다고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달라진 통상임금으로 인해 기업들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임금 부담액이 연간 6조 8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 사업장은 임금체계·임금수준이 달라 통상임금 부담액도 제각각이다.
전문가들은 노사가 통상임금 갈등을 피할 길은 수당 단순화와 같은 임금체계 개편이라고 조언한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수당 체계가 복잡해 임금제도 변화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현대차만 하더라도 2015년 일반에 공개됐던 수당 종류가 120여 개였다. 이는 해외에 비해 우리나라에 노사 간 수당의 성격을 둘러싼 임금 소송이 유독 많은 배경으로 지목된다. 또 서울시 버스 사례는 기업에 ‘임금과 통상임금 협상을 분리해야 빠른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시사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버스 노사는 임금협상과 무관한 통상임금 관련 소송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놓고도 부딪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임금체계 개편은 사업장에 따라 임금협상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임금체계는 사업주 임의대로 바꿀 수 없다. 반드시 근로자 과반수 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임금·수당·연차휴가 등 취업규칙이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바뀌면 해당 사업주는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경총 측은 “통상임금 판결로 그동안 노사 합의가 무산돼 현장 혼란이 가중됐다”며 “노사 간 합의를 통해 복잡한 임금체계를 단순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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