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국인 고문치사 사건을 두고 정부가 총력 대응에 나섰지만 피의자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을지는 결국 현지 수사 결과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으로 신병이 송환된다 하더라도 범죄인인도 조약의 ‘특정성 원칙(인도된 혐의만 재판할 수 있는 원칙)’ 때문에 인도 요청서에 살인 혐의가 포함되지 않으면 한국 법정에서는 그 혐의로 재판조차 열 수 없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부 합동대응팀은 최근 한국인 대학생 고문 사망 사건 등과 관련해 현지 당국에 수사 협조를 요청 중이다. 대응팀은 캄보디아 수사 당국과의 공조 결과에 따라 범죄인 인도 요청서를 제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관련기사
법조계에서는 피의자를 신속히 송환하더라도 실질적인 처벌 가능성은 현지 수사에서 이미 결정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과 캄보디아가 2011년 맺은 범죄인인도 조약에 명시된 특정성 원칙 때문이다. 이는 인도된 범죄인에 대해 인도 요청서에 명시된 혐의에 한해서만 재판할 수 있고 피요청국의 동의 없이 새로운 혐의를 추가하거나 변경할 수 없다는 국제법상의 규정이다. 인도 요청 단계에서 살인 혐의가 누락되면 한국으로 송환된 뒤에는 살인죄로 기소할 법적 근거가 사라진다는 게 법조계 지적이다.
이 같은 한계는 과거 베트남 납치·살인 사건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피의자는 베트남에서 불법 감금 혐의로만 인도 승인을 받아 한국으로 송환됐고, 결국 법원은 불법 감금 혐의만 인정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반면 올해 3월 부산지방법원은 우루과이에서 발생한 한인 선원 살해 사건에서 인도 요청 단계에서 살인 혐의를 명시했고 이에 따라 한국 재판부는 살인죄를 인정해 징역 12년형을 선고했다.
결국 초기 수사 성과가 관건이다. 캄보디아와 한국은 2021년 형사사법공조조약(MLAT)을 맺어 수사·재판 과정에서 상호 증거 제출과 자료 협조가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조약은 한국 수사기관이 현지에서 직접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는 아니며 캄보디아 경찰이 대신 조사를 진행하고 결과를 송부하는 간접 수사 구조다. 한 형사법 전문 변호사는 “살인 혐의가 빠진 채 송환이 이뤄지면 국내에서 새로운 정황이 드러나더라도 추가 기소가 불가능하다”며 “결국 납치나 감금치사 수준의 처벌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