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사가 나흘 동안 3조 원 넘는 컨테이너선 수주 계약을 ‘싹쓸이’했다. 중국이 90%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우위를 보인 컨테이너선 시장이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향후 중국에 대한 미국의 조선·해운 규제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국내 조선업계의 반사이익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HD한국조선해양(009540)은 최근 오세아니아 선사와 컨테이너선 18척에 대한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고 28일 밝혔다. 컨테이너선을 발주한 선사는 그리스 해운사인 캐피털마리타임으로 알려졌다. ★본지 4월 26일자 1·4면 참조
HD한국조선해양이 수주한 컨테이너선은 84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4척, 2800TEU급 8척, 1800TEU급 6척 등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23일 2800TEU급 컨테이너선 2척을 수주했고 다음 날인 24일에도 1만 6000TEU급 컨테이너선 2척을 수주하며 총 22척의 컨테이너선을 수주하는 성과를 거뒀다. 수주 금액은 2조 5354억 원에 달한다.
HD한국조선해양은 HD현대미포(010620) 울산조선소에서 2800TEU 10척과 1800TEU급 6척을, HD현대삼호의 영암조선소에서 1만 6000TEU급 2척과 8400TEU급 4척을 각각 건조해 2028년 상반기까지 선주사에 인도할 예정이다.
삼성중공업(010140)도 이날 컨테이너선 2척 건조 계약을 5619억 원에 체결했다. 선주는 대만의 해운 업체인 완하이라인으로 추정된다.
최근 미국이 국적과 기업에 상관없이 중국산 선박에 입항 수수료를 매기기로 하자 글로벌 선사들이 중국산 컨테이너선 수주를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10월 14일부터 중국 기업이 운영하거나 소유한 선박에 톤당 50달러(약 7만 원)의 입항 수수료를 받는다. 다른 나라 기업이라도 중국산 선박을 운항하면 톤당 18달러 혹은 컨테이너당 120달러를 내야 한다.
미국이 중국 해운·조선산업 때리기에 나서면서 글로벌 선사들의 컨테이너선 발주는 한국으로 향하고 있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이날 기준 한국의 올해 컨테이너선 수주 점유율은 38.2%로 지난해 11.4%보다 27%포인트가량 급증했다. 중국의 점유율은 86.6%에서 51.2%로 낮아져 격차는 75.2%포인트에서 13%포인트로 크게 줄었다.
특히 이날 HD한국조선해양의 수주처럼 중소형 컨테이너선 분야에서 한국 조선업계의 약진이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간 대형선보다 중소형선에서 중국의 발주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중소형선이 글로벌 선사의 선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8%로 대형선(33%)보다 높다. 발주 잔고 비중 역시 68%로 대형선 58%보다 10%포인트가량 높다.
실제 중소형선 컨테이너선을 전문적으로 건조하는 HD현대미포는 올 들어 전 세계에서 발주한 33척의 피더 컨테이너선 중 절반에 가까운 16척을 수주해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피더 컨테이너선은 3000TEU급 미만으로 허브 항만과 소규모 항만을 운행하는 중소형선으로, 안정적인 내수 시장과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 중국 조선사들이 우위를 점해왔다.
슈퍼 사이클을 맞은 국내 조선업계는 수주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생산시설도 본격적으로 확충하고 있다. 한화오션(042660)은 이날 2027년 3월까지 부유식 도크 1기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부유식 도크가 도입될 경우 기존 도크들과 역할 분리를 통해 선박 생산량 증대가 가능하다. 한화오션은 현재 육상 도크 2기와 부유식 도크 3기 등 총 5기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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