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17일(현지 시간) 중국의 해운·조선 산업에 대한 견제 조치를 내놓으면서도 유화 제스처를 취하자 강경 일변도였던 대(對)중국 정책 기조에 변화가 생겼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의 관세 폭격에 중국이 보복관세, 희토류 수출 금지, 홍콩발 소포 발송 중단 등 예상 밖으로 강하게 맞서자 중국을 압박하면서도 조속한 타협으로 성과를 내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조급함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우리는 중국과 대화하고 있다. 그들이 수차례 연락해왔다”면서 중국과 대화가 진행 중이라는 점을 부각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중국과 협상 타결에 걸리는 시간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3~4주 내에 전체 협상이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중국에 145%, 중국이 미국에 125%의 관세 폭탄을 때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추가 인상을 하고 싶지 않다며 유화 제스처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125% 이상으로 관세를 올리면 어떻게 되나’라는 질문에 “더 관세를 올리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사람들이 구매를 중단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관세를 낮추고 싶을 수도 있는데 사람들이 (물건을) 구매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팃포탯(tit for tat·맞받아치기)식 대중국 관세정책이 거의 끝났다는 신호를 줬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계 동영상 플랫폼 틱톡 매각 협상과 관련해서도 중국이 틱톡의 미국 내 사업 매각에 서명할 경우 관세(인하)를 고려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중국과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열린 입장을 취했다. 앞서 이달 15일 트럼프 대통령은 “공은 중국에 있다”며 협상 참여를 요구했다. 중국과 대화를 진행 중이라는 이날 발언이 사실이라면 16~17일 중국 측의 연락이 있었고 미중 양국이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로이터는 소식통을 인용해 “미중이 교류는 하고 있지만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고위급 의견 교류는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예상 밖으로 강하게 버티자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 압박 수위를 높이는 동시에 유화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무차별적 관세 폭격으로 금융시장 발작, 미국 경기 침체 경고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중국이 협상 의지를 보이지 않고 무대응으로 일관하자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다급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꿈쩍 않는 중국을 겨냥한 압박 카드도 잇따라 꺼내 놓고 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 해운사, 중국산 선박을 운영하는 해운사, 외국에서 건조한 자동차 운반선 등에 미국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이날 결정했다. 수수료는 180일 유예기간을 두고 10월 14일부터 단계적으로 부과된다. 중국 기업이 운영하거나 소유한 선박에 톤당 50달러의 입항 수수료가 부과되고 매년 인상해 2028년에는 140달러가 된다.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기업이 운영하는 선박이라도 중국에서 건조했으면 톤당 18달러를 시작으로 2028년까지 33달러를 내야 한다. 앞서 이 정책을 두고 수수료가 미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며 공급망에 대혼란이 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자 USTR은 유예기간을 두고 수수료 부과도 단계적으로 하는 등 초안보다 완화된 최종안을 내놨다. 이번 정책으로 조선·해운 시장에서 중국에 대한 수요가 줄며 한국이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의 해산물 경쟁력 회복’ 행정명령을 통해 해산물 교역과 관련해 강제 노동 활용 등 비관세 장벽에 대한 대응 전략을 60일 이내에 마련할 것도 지시했다. 어선을 활용한 강제 노역 의혹을 받고 있는 중국을 정조준한 조치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책사인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은 18일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중국은 세계 무역을 혼란시키고 불공정한 무역 환경을 만들어내는 최악의 가해자임이 명백하다”면서도 “시장 개방이나 무역 장벽 시정과 같은 미국에 중요한 조건을 중국이 제시하면 합의가 성립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으며 중국의 행동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미란 위원장은 동맹을 압박해 달러 약세를 유도하고 동맹에 100년 만기 초장기 미국 국채를 사실상의 무이자로 구매하게 한다는 내용의 ‘미란 보고서’를 지난해 11월 5일 대선 직후 발간해 관심을 모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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