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기념한다. 개인에게 또는 그가 속한 공동체에 의미 있는 일을 기억하고 되새기며 기념한다. 올해는 광복 80년을 맞는 해다. 또 한일 간에 국교가 정상화된 지 6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1945년 광복의 감격과 함께 설립된 국립중앙박물관은 올해 12월 80주년을 맞으며 그 이듬해 출발한 국립민족박물관에 뿌리를 둔 국립민속박물관도 내년 4월이면 80주년이다. 독립국가의 자존을 뒷받침할 문화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뜻깊은 일이 국립박물관에서 시작됐기에 마땅히 기념할 날들이다.
현재 대한민국 법률로 제정된 공식 기념일은 150개가 넘는다. 여기에 개인의 생일, 결혼기념일, 기일 등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여러 기념일들을 보태자면 1년 365일 매일 기념할 일이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많은 기념일들을 매개로 자신들이 소중히 하는 가치를 재확인한다. 가깝게는 자신과 가족의 가치를, 더 나아가서는 그들이 속한 크고 작은 공동체가 소중히 하는 가치를 기념이라는 행위 속에서 확인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또 사람들은 이런 기념의 행위를 무언가 손에 잡히는 물건으로 표상해 기억하고자 한다. 바로 기념품이다. 조선 후기 임지를 떠나는 원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고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빼곡히 수놓은 아름다운 일산을 선물했다. 21세기 대한민국 군인이 전역할 때 그와 함께했던 부대원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전역자의 전투복에 새겨 선물하는 모습과 발상이 거의 같다. 또 초상화의 나라로 불릴 만큼 많은 초상화가 제작된 조선 왕조에서 초상화 한 장 한 장은 관료로 출세한 이들의 명예를 자자손손 기념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사진기가 발명된 이래 소중한 기억을 담아 전하는 기념품의 으뜸은 사진일 것이다. 백일 사진부터 입학과 졸업 사진, 결혼사진, 회갑 사진 등 기념할 만한 중요한 인생의 여정을 담은 사진이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됐다. 이미 대한제국 시기에 시작돼 한국전쟁 이후 동네 사진관으로 발전해 가는 사진관들은 이러한 ‘기념 문화’의 소산이다. 물론 사진을 매개로 한 기념의 행위는 개인과 가족의 테두리 안에 머물지 않는다. 1948년 대한민국의 제헌 헌법을 공포한 일을 기념한 ‘헌법 공포 기념사진’에는 제헌의원 전원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처럼 소중한 기념일들을 효과적으로 기억하는 방법이 고안됐으니 바로 달력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벽걸이용이든 탁상용이든 달력에는 빼곡히 기념일들이 적혀 있다. 공동체가 함께 기억해 그 의미를 되새기려는 것이다. 주요 사례로 1945년 광복을 전후로 제작된 3건의 달력에는 해당 사회가 추구하던 가치가 잘 드러난다. 광복 전인 1945년 일제 치하의 달력, 광복을 맞은 직후 만든 달력,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의 1949년 달력에 기재된 기념일들은 시기마다 달리 추구한 나름의 가치들을 드러내는 시대의 초상이다.
이처럼 기념한다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되짚어 보며 그 생생한 증거인 기념품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두 건의 특별 전시가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먼저 ‘오늘도 기념, 우리가 기념품을 간직하는 이유’라는 전시는 기념품 속에 담긴 보편의 희망과 의지, 욕망과 소망을 풀어내고 있다. 이웃한 공간의 ‘사진관 전성시대’ 전시도 인생의 소중한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려는 우리들의 절절한 마음을 담는다.
어쩌면 박물관은 알뜰히 삶을 가꾸어 맺은 결실을 소중히 여기고 오래도록 이어가려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살피고 응원하는 곳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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