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관세 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중국 반도체산업협회(CSIA)가 반도체 팹이 자리한 곳을 원산지로 삼자고 제안했다. 반도체 칩이 제품으로 패키징되는 지역과 관계없이 실제 칩이 나오는 곳을 기준으로 보자는 것이다. 인텔과 마이크론 등 미국 반도체 업체를 견제하는 한편 중국이 강점을 지닌 패키징과 내수 중심인 파운드리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13일(현지 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CSIA는 11일 “패키징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반도체 수입통관시 원산지는 웨이퍼 팹이 위치한 곳을 기준으로 하자”고 공지했다.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는 팹을 거쳐 칩으로 만들어진다. 칩은 기판에 붙이는 패키징 공정을 거쳐 제품으로 완성된다. 그동안 각국 정부와 업계에서는 관세 적용 대상이 칩인지, 완성된 제품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해 왔다. 최종 ‘제품’이 만들어지는 패키징 지역을 관세 적용 대상지로 보는 시선이 우세했지만 이번에 중국이 제안하고 나선 것은 칩 생산지 기준으로 보자는 입장이다.
이 경우 미국에서 반도체를 만든 후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서 패키징하던 인텔·마이크론·텍사스인스투르먼트(TI) 등은 중국의 관세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반면 중국 업체들은 대만 TSMC나 한국 삼성전자가 만든 엔비디아·AMD·퀄컴 칩셋이 어디서 패키징되더라도 관세 없이 수입할 수 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패키징은 상대적으로 노동집약적인 산업이어서 대부분 미국 밖에서 이뤄지고 중국에서 만들어진 칩 자체를 미국에서 수입하는 일은 드물다”며 “중국과 거래가 많은 미국 반도체 생산자에는 타격을 주고 자국 산업은 보호하겠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이 조치로 중국 파운드리 업계가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퍼지면서 관련 종목들도 상승했다. CSIA 공지가 나온 11일 홍콩 증시에서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 SMIC 주가는 5.9% 상승했다. 화훙반도체는 14% 급등했다. 같은 날 인텔 주가는 장중 6% 하락했고 TI는 5.75% 하락 마감했다. 다만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반도체 관세 적용을 유보하며 실제 중국 정부가 CSIA 제안을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는 평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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