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대에도 가동 중단 없이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2016년 첫 논의가 시작된 후 내내 국회에 발이 묶여 있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법안 소위에서 처리됐기 때문이다. 법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까지 넘으면 원전 외부에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할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고준위방폐장법과 함께 에너지 3법을 구성하는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해상풍력특별법도 함께 소위를 통과했다. 이들 법안은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에 뒷전으로 밀렸지만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더 이상 논의를 늦출 수 없다는 데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하며 급물살을 탔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17일 제1차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를 열고 에너지 3법을 차례로 통과시켰다. 이날 통과된 법안 중 가장 관심을 모았던 법안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저장·관리하는 시설을 만드는 내용의 고준위방폐장법이다. 여야는 20대 국회에서 고준위방폐장법을 처음 발의한 후 여러 쟁점을 두고 줄곧 줄다리기를 해왔다.
21대 국회에서 특별법이 다시 발의됐지만 건식저장시설의 ‘저장 용량’ 부분에서 여야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또 좌초됐다. 통상 ‘사용후핵연료’라 불리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현재 원전 내 습식저장시설에서 보관된다. 별도의 방폐장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2030년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대부분 원전의 습식저장시설이 포화된다는 점이다.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지금 당장 시작해도 2050년께나 완성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사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보관할 시설이 필요하다. 건식저장시설은 습식저장시설에서 더이상 감당할 수 없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보관하기 위해 원전 부지 내 설치되는 콘크리트 저장 시설이다.
야당은 건식 저장 용량을 원전 설계수명 기간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전의 최초 설계수명이 종료되면 저장 용량을 늘릴 수 없도록 해 사실상 ‘탈원전’ 기조에 발맞춰 시설을 만들자는 것이다. 반면 여당은 원전 운영 허가 기간의 발생 예측량으로 하자고 맞섰다. 원전 연장 수명 가능성을 고려해 실제 필요한 용량을 확보하자는 논리였다.
결국 이날 통과된 고준위방폐장법은 야당안을 중심으로 수용됐다. 정부는 건식저장시설의 용량이 다소 줄더라도 법안이 빠르게 통과되는 것이 낫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설계용량만큼의 저장시설이라도 확보되면 그 사이 고준위 방폐장을 지어 대응할 수 있다”며 “당장 수년 뒤 습식저장시설이 포화되기 시작하므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고 설명했다.
고준위방폐장법에 앞서 소위를 통과한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은 대규모 전력이 필요한 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가 국가전력망 확충을 지원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산업부에 따르면 345㎸ 이상 고압 송전망의 규정상 건설 기간은 9년이지만 주민 반대와 인허가 문제 탓에 실제 평균 사업 기간은 13년 소요되는데 이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소위원장인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력망을 하나 만들 때마다 지역 주민들의 반대도 있고 건설 비용도 많이 들어 어렵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지원으로 지정된 전력망은 특별히 신속 지원할 수 있게 하고 먼저 생산된 곳에서 전기를 우선 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민간이 주도하던 사업을 정부 주도의 계획 입지 방식으로 바꾸는 내용의 해상풍력특별법도 이날 함께 의결됐다. 정부가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사전에 지정한 해상풍력단지 안에 사업자를 모집하는 방식이다. 해상풍력특별법은 고준위방폐장법과 함께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논의를 거듭했지만 끝내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수년째 표류 중이던 에너지 3법이 법안 소위를 통과하자 산업계에서는 고질적인 전력망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생겼다는 안도의 목소리가 나왔다. AI 혁명으로 전력 수요는 급증하는데 정작 송배전망이 부족해 남아도는 재생에너지를 적시 적소에 공급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소위를 통과한 법안들은 이르면 19일로 예정된 산업중기위 전체회의 심의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회의도 무사히 넘기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 본회의 의결 절차를 거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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