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가성비’의 대명사였던 중국산 가전이 디자인과 기술력을 끌어올린 데 이어 국산 제품들의 마지막 보루와도 같았던 애프터서비스(AS) 강화에 돌입하면서 국내 업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싼 가격이 아닌 제품력으로 프리미엄 채널인 백화점 등에 속속 입점한 중국산 가전들이 AS 경쟁력까지 장착해 시장 입지를 공고히 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한국 기업들은 차별화된 ‘비포서비스(BS)’, 특허 기술의 상품화 등으로 중국산의 공습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글로벌 수준 디자인, 한국 소비자 눈높이까지 따라와
16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가전 기업 메이디와 하이얼은 ‘iF 디자인 어워드’ 랭킹에서 각각 3,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시상식은 ‘레드닷 어워드’, ‘IDEA 어워드’와 함께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로 꼽힌다. 메이디는 지난해 자체 브랜드를 달고 한국에 상륙했으며 하이얼은 한국 시장에 진출한 지 20년이 넘는다. 이런 흐름 속에 국내에서도 중국산 제품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하이얼의 ‘레트로 냉장고’가 SNS에서 인테리어 가전으로 인기를 얻는 등 중국 가전 업체들도 ‘숏폼’ 등을 통해 디자인을 강조한 마케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는 “중국 업체들이 과거 저가 공세와 달리 디자인에 공을 많이 들이면서 수준이 이미 우리나라 턱밑까지 따라왔다”며 “이제 국내 기업들과 동반 발전하는 분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력에 프리미엄 시장 차지…韓기업이 후발 주자로
중국 가전 기업들은 기술력에서도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였다. 국내 기업들이 일체형 로봇청소기 출시를 미룬 사이 로보락은 선제적으로 제품을 판매했다. 로보락의 연매출은 국내 진출 첫해인 2020년 291억 원에서 2023년 2000억 원으로 가파르게 성장하며 한국 로봇청소기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신세계·롯데·현대 등 주요 백화점에 입점하며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앞서가고 있다. 로보락의 최신 제품 가격은 180만 원에 달한다. ‘저렴한 가격에 낮은 품질’이라는 인식이 완전히 깨진 것이다. 이러다보니 중국 기업보다 가격 경쟁력을 내세우는 국산 브랜드까지 등장했다. 신일전자는 지난해 첫 로봇청소기 제품 ‘로보웨디’를 선보이며 130만 원 아래로 가격을 책정했다. LG·삼성의 로봇청소기 가격이 160만~180만 원 정도이고, 로보락이 150만 원대인 것을 고려한 결과다.
최대 약점 AS도 확충…국내 기업 돌파구는
중국 기업들은 최대 약점이었던 AS마저 따라잡을 채비에 나섰다. 지난달 한국 법인을 설립한 샤오미는 올 상반기 국내에 첫 오프라인 매장을 열고 직영 AS센터를 신설할 예정이다. 그간 위탁으로만 AS를 운영한 탓에 소비자들 사이 불만으로 꼽히던 사후서비스를 보완해 한국 진출을 가속화하겠다는 취지다. 샤오미는 이와 함께 TV, 로봇청소기 등 생활가전 신제품도 다수 선보일 계획이다.
중국 기업 에코백스도 지난해 36곳에 불과했던 AS센터를 현재 63곳으로 늘렸다. 상반기 내에 서비스 강화를 위한 구상도 선보일 예정이다. 하이얼·메이디는 쿠팡과의 협력을 통해 ‘쿠팡안심케어’ AS를 제공하고 있다.
디자인과 기술력을 따라잡은 중국 가전 기업들이 현지 관리 서비스를 확충하면 안방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특히 중국 가전업체들은 아직 한국에 출시하지 않은 제품이 많아 판매망과 AS망이 안정되면 언제든지 한국 시장 라인업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차별화된 관리 서비스나 신제품 개발로 돌파구를 마련한단 계획이다. 코웨이(021240)는 사후 관리가 아닌 사전 점검인 ‘비포서비스(BS)’를 운영하고 있다. 정수기나 공기청정기는 주기적으로 필터 교체가 필요한 만큼 사전에 기기를 관리해 고객 만족도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청호나이스는 특허 기술이 담긴 제품군 판매에 주력하는 전략을 세웠다. 회사는 최근 커피정수기 ‘휘카페’에 대한 신규 TV광고를 제작하고, 전용 멤버십을 출시하는 등 마케팅·프로모션을 강화했다. 그 결과 휘카페의 올 1월 판매량은 직전 달 대비 50% 증가했다. 회사 관계자는 “중국 기업에는 없는 자사만의 제품에 주력하고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차별화 전략을 펼쳐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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