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되는 모든 철강 제품에 25% 관세 부과를 강행하고 자동차와 반도체까지 관세 폭격의 사정권에 넣자 관련 업계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당장 철강 업계는 6조 원이 넘는 철강 제품을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하다 고율 관세를 안고 미국 경쟁사는 물론 일본, 브라질, 유럽연합(EU) 철강 업체들과 생사를 건 무한 경쟁을 벌여야 할 처지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핵심 원자재인 철강에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자동차에도 관세 부과를 예고해 자동차 업계는 이중고에 직면할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는 예상치 못한 관세 위협에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에 25% 관세 부과를 결정하면서 기존 협상을 백지화했다. 미국에 이익이 되고 필요하다면 국가 간 협정조차 무시하겠다는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미국은 2015~2017년 우리 측 연평균 철강 수출량(약 383만 톤)의 70%까지 관세(25%)를 면제하기로 했다. 하지만 2기 행정부는 이를 무효로 하고 다음 달 12일부터 모든 수입 철강에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한국은 관세를 피하면서 대미 수출량을 연간 263만 톤, 6조 3000억 원 규모로 줄였는데 이제는 25% 관세를 안고 미국 시장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일단 미국 철강 업체들이 유리하게 됐는데, 철강 업계는 25%의 관세를 안고서도 현지 업체들과 경쟁할 수 있는 품목들을 선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과 브라질·EU 철강 업체들도 기존 무관세 쿼터가 사라져 25% 관세를 맞게 돼 미국 철강 시장을 둘러싼 경쟁은 혼전 수준으로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미국이 강력히 견제하고 있는 중국 철강 업체의 경우 이미 50% 이상의 관세를 부담하고 있어 중국산 저가 철강 제품과 출혈경쟁을 벌일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철강 업계는 관세 부과일까지 한 달가량 남은 만큼 양국 정부 간 협상에 희망을 걸고 있지만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정상외교가 어려운 만큼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응하는 분위기다.
철강에서 시작된 관세 폭탄의 불똥이 대미 최대 흑자 산업인 자동차와 반도체로 튈 가능성도 우려된다. 국내 자동차 산업에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보편관세(10~20%)나 철강 수준의 관세(25%)가 부과될 경우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승용차(240억 달러)와 자동차 부품(79억 달러), 기타 자동차(50억 달러), 전기차(36억 달러) 등 국내 자동차 산업이 대미 수출로 얻은 흑자만 405억 달러(약 59조 원)에 달한다. 대미 무역흑자의 약 73%가 자동차 산업에서 나온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관세인 한국 차에 25% 관세를 부과하면 산술적으로 수조 원의 비용을 기업들이 추가로 떠안게 될 수 있다.
문제는 미국 현지 공장 등을 이용해 생산 다변화를 꾀해도 관세 폭풍을 모두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 판매량(약 171만 대)의 55%가 국내 생산 물량이어서 현대차(005380)·기아가 현지 공장을 최대로 증설해도 50만 대 이상은 한국 공장에서 들여와야 한다. 미국 생산을 늘리면 국내 공장의 가동률이 떨어질 우려가 커 고용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특히 소형차 생산에 특화된 한국GM은 생산량의 90%를 미국으로 수출하는 구조다. 고율 관세가 부과되면 사실상 경쟁력을 상실해 존폐의 기로에 놓일 수 있다.
대미 수출 2위인 반도체 업계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업계는 일단 트럼프 정부의 추후 보호무역 조치 세부 사항을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반도체는 다른 산업에 비해 공급망이 복잡한데 미국 메모리 기업인 마이크론도 주력 생산 공장이 대만과 일본에 있다. 미국이 모든 국가에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기업도 영향을 받게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인공지능(AI) 등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 연관된 반도체는 다른 접근법을 취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조중휘 인천대 임베디드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미국 내 자체 생산하는 반도체가 많지 않아 높은 관세는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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