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지수펀드(ETF) 업계 2위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미국 대표지수 사품의 수수료를 기존의 10분의 1 수준까지 낮추면서 1위 도전에 고삐를 죄고 나섰다. 금융투자 업계는 수수료 출혈 경쟁이 다시 한번 크게 번질 수 있다며 잔뜩 긴장한 모양새다.
미래에셋운용은 6일 ‘TIGER 미국S&P(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과 ‘TIGER 미국나스닥100’의 총보수를 기존 연 0.07%에서 0.0068%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해당 수수료는 이날부터 바로 적용한다. 앞서 미래에셋운용은 2020년 11월 두 ETF의 총보수를 연 0.3%에서 0.07%로 한 차례 내린 바 있다. 특히 TIGER 미국S&P500은 지난해 국내 전체 ETF 가운데 개인 누적 순매수 규모 1위를 차지한 상품이다. 미국 대표지수 ETF로는 아시아 전체로도 최대 규모다. 공교롭게도 두 ETF는 지난해보다 대폭 줄어든 분배금을 지난달 배정해 투자자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빚은 상품이기도 하다.
미래에셋운용은 이번 보수 인하는 투자자들의 높은 성원에 보답하고 미국 주식 투자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래에셋운용은 이번 수수료 인하 발표 직전까지 자사 홈페이지의 ‘타이거 ETF’ 코너에 ‘세상을 놀라게 하다’라는 문구와 6일을 거냥한 ‘D데이’를 병행 표기하며 일찌감치 파격 조치를 예고했다.
김남기 미래에셋운용 ETF운용부문 대표는 “2006년 국내 ETF 시장 첫 진출 이후 ‘TIGER’가 아시아 대표 브랜드로 성장했다”며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대표지수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투자하는 시대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미래에셋운용의 이번 총보수 인하가 ETF 1위 사업자인 삼성자산운용을 겨냥한 조치로 해석했다. 삼성운용은 지난해 4월 ‘KODEX 미국S&P500TR’ 등 미국 대표지수 투자 ETF 4종의 수수료를 기존 연 0.05%에서 0.0099%로 인하한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미래에셋운용은 미국 대표지수 ETF가 아닌 금리형 상품 ‘TIGER CD1년금리액티브(합성)’의 수수료를 연 0.05%에서 0.0098%로 내리는 방식으로 맞불을 놓았다. 여기에 이번 수수료 인하로 미래에셋운용의 미국 대표지수 ETF 총보수조차 삼성운용보다 0.003%포인트 낮게 됐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4일 기준으로 삼성운용과 미래에셋운용의 ETF 순자산은 각각 69조 1874억 원, 64조 8213억 원으로 4조 3661억 원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ETF 전체 순자산(182조 1305억 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삼성운용 37.99%, 미래에셋운용 35.59%로 2.40%포인트의 격차다. 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운용은 박현주 그룹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올해 선도기업으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할 예정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미래에셋운용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수수료를 낮추자 ‘제 살 깎기’ 경쟁이 자산운용사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ETF 시장 규모가 해외 주식 투자를 중심으로 올해 200조 원을 넘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에 수수료 경쟁에서 한 번 밀리면 시장 지위를 잃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에도 삼성운용이 수수료 인하 신호탄을 쏘자 한화와 마이다스에셋 등 중소형사들까지 줄줄이 출혈 경쟁에 뛰어든 바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ETF 인력 쟁탈전에 수수료 경쟁까지 더해지면서 중소형사가 살아남기 더 어려운 구조가 됐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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