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KB국민·NH농협은행 등에서 이뤄진 3800억 원대의 부당 대출이 금융 감독 당국에 적발됐다. 우리금융의 경우 문제가 된 대출이 2300억 원을 웃도는 데다 자회사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 기능을 못했다는 점이 드러나 현재 추진 중인 동양생명·ABL생명 인수 작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금융감독원은 4일 이 같은 내용을 뼈대로 한 ‘2024년 지주·은행 등 주요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금융 검사 결과 우리은행에서 총 2334억 원, 101건의 부당 대출이 확인됐다.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이 연루된 규모만 734억 원으로, 기존에 알려진 350억 원의 두 배가 넘었다. KB국민은행은 허위 매매계약서를 바탕으로 한 대출 892억 원이 적발됐다. NH농협은행은 감정평가액을 부풀리거나 여신 한도를 위반한 대출이 649억 원이었다. 일부 직원은 이를 대가로 1억 3000만 원의 금품을 받았다.
시장의 관심은 우리금융에 쏠린다. 금감원은 손 전 회장 관련 대출 건 이외에도 다수의 임직원들이 관여한 부당 대출 사례가 대거 포착된 점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여신지원그룹 부행장 A 씨는 같은 교회 교인인 대출 브로커를 부하 직원이던 지점장 B 씨에게 소개해줬고 B 씨는 브로커를 통해 17억 8000만 원 규모의 대출을 내주면서 3800만 원의 뒷돈을 챙긴 정황이 당국 검사로 드러났다.
문제는 우리금융이 여신 관련 징계 기준을 헐겁게 두면서 대규모 부당 대출 사태를 사실상 자초한 면이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우리은행 징계 기준을 보면 10억~20억 원 규모의 금융 사고가 발생할 때 경징계인 견책 조치를 직원에게 내린다. 대다수 은행이 2억 원 이상의 귀책 금액만 생겨도 감봉 이상의 징계를 내리는 것과 대조된다. 특히 지금의 경영진 아래에서 60%가 넘는 부당 대출이 취급됐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날 “부실한 내부통제나 불건전한 조직 문화에 대해 상을 줄 생각은 없다”며 “금융 사고를 축소하려 하거나 사고자를 온정주의적으로 조치함으로써 대규모 금융 사고가 반복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금감원은 우리금융이 동양생명·ABL생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이사회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목했다. 우리금융은 지난해 8월 동양생명 지분 75.34%를 1조 2840억 원에, ABL생명 지분 100%를 2654억 원에 각각 인수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인수 기한을 1년으로 두고 기한 안에 계약을 맺지 못하면 인수가의 10%인 1549억 원을 물어야 하는 조건이 달렸다. 하지만 우리금융은 이 계약의 위험성을 점검한 리스크위원회를 개최하지 않은 채 이사회에 안건을 올렸다.
이 때문에 금융계에서는 우리금융의 동양생명·ABL생명 인수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우리금융이 두 생명보험사를 인수하려면 경영실태평가에서 2등급 이상을 받아야 하는데 이번 조사 결과 3등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실태평가 기준은 △자본 적정성 △내부통제 △리스크 관리 등으로 구성되는데 우리금융이 이번 검사에서 모두 낙제점을 받은 항목이다. 이 원장은 “우리금융지주가 1월 15일 보험사 인수합병(M&A) 승인 심사 신청을 했고 기한은 2개월”이라며 “2월 중에라도 금융위원회에 저희 의견을 통보할 수 있어야 금융위가 3월 중에 판단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대 수개월이 걸릴 수 있는 검사 결과에 따른 조치와 경영실태평가를 분리해 진행하겠다는 게 금감원의 입장이다.
다만 금감원이 등급을 내려도 금융위에서 인수를 승인할 수 있다. 금융지주사 감독규정에 따르면 향후 자본금 증액이나 부실자산 정리 등을 통해 건전성 등이 개선될 여지가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인수를 허용한다. 우리금융은 “이사회 안건 자료에 몰취조항이 포함돼 있었으며 사전에 충분히 논의된 사안”이라며 “당국 승인 불발 시 계약금 몰취가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이날 검사 결과를 통해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에서 금품을 대가로 부당 대출이 이뤄진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KB국민은행은 금융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데도 영업점 내부 감사 주기를 3년으로 일률적으로 운영하고 감사 기간도 3~4영업일로 짧아 감사 체계가 느슨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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