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이 지난 2013년 2월 3차 북핵 실험을 강행한 이후 한반도 내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상황에서 그해 3월에 실시된 한미 대규모 실기동 연합훈련 ‘키리졸브와 독수리 연습’ 일환으로 미국 괌에서 미 공군 B-2 ‘스피릿’ 스텔스 폭격기 2대가 이륙해 한반도까지 날아와 훈련용 폭탄을 서헤상 적도 사격장에 투하하고 돌아간 적이 있다.
한미 연합훈련의 연장선이지만 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도발 징후에 대한 엄중한 경고성으로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며 무력시위를 펼쳤다. 주목할 점은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B-2 출격 소식에 놀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한밤중에 최고사령부 작전 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미사일 부대들에 사격 대기 명령을 내리는 등 긴박한 순간을 보냈던 것으로 우리 정보당국이 확인하기도 했다.
B-2는 북한이 강력한 항공 방어망을 갖춘 핵 시설이나 미사일기지, 유사시 평양 주석궁 등 북한의 지휘 시설을 타격 목표로 삼고 있다. B-2는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성능과 B-52에 못지않은 폭탄 탑재량을 갖춘 최첨단 전략폭격기다. 앞서 3월19일과 25일 두 차례에 거쳐 B-52 전략폭격기도 한반도에 출격했다.
지난 2003년 3월 발발한 이라크 전쟁 개전 직전에 미국은 전략폭격기 B-52, B-1B를 앞세워 바드다드의 주요 벙커에 대한 정밀타격을 실시하는 작전을 펼쳐 사전 제압에 성공했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 개전과 함께 벙커버스터(지하 벙커를 뚫은 폭탄) 탑재 가능성을 언론에 흘리며 이라크군 지휘부를 혼란에 빠지게 했다.
당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군 지지휘소 대신 비공개 은신처를 옮겨 다닌 탓에 군 지휘체계는 마비됐고 결국 사담 후세인 정권은 몰락했다. 벙커버스터를 활용한 강력한 타격 능력으로 적 지휘부를 떨게 하고 전쟁 승기를 잡는데 B-52, B-1B가 크게 기여하며 세계 최고 전력폭격기로서 위상을 떨친 것이다.
전략폭격기는 가공한 위력 때문에 전쟁 승패를 좌우하는 ‘게임체임저’로 불린다. 보유한 국가는 손가락으로 꼽힌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 3개국에 불과하다. 이들 국가는 전략폭격기 보유 덕분에 압도적인 전략적 타격 능력을 갖추면서 공군력에 있어 세계 최위권을 차지한다.
미국은 세 종류를 보유하고 있다. 우선 핵폭탄 탑재가 가능한 장거리 폭격기 B-52 ‘스트래토포트리스’, 스텔스 폭격기 B-2 ‘스피릿’, 여기에 가장 빠른 비행 속도를 자랑하는 장거리 폭격기 B-1B ‘랜서’가 있다. B-52는 1950년대 개발해 31t 폭탄 탑재와 전력폭격기 가운데 가장 긴 1만 6327㎞에 달하는 항속거리를 자랑하고 80여대를 운용 중이다.
B-2 스피릿은 스텔스 성능으로 적 레이더 회피가 장점이다. 23t 폭탄을 탑재할 수 있고 40여기가 운용 중이다. B-1 랜서는 최대 속도는 마하 1.25, 56.7t 폭탑을 탑재할 수 있다. 스텔스 기능과 근접항공지원이 특화돼 있다. 미 공군은 B-1B를 60여대 보유하고 있다. 전략폭격기 전략은 미국이 세계 최강이다.
러시아는 터보프롭 엔진의 장거리 대형폭격기 Tu-95, 초음속기 Tu-22M, 핵공격을 위한 초음속 전략폭격기 Tu-160 등을 운용하고 있다. 공중급유 및 조기경보 시스템과 연계된 작전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 Tu-16 기반의 H-6K 장거리 폭격기를 개발했다. 30t 폭탄을 탑재할 수 있지만 항속거리 6000㎞에 사거리 2000㎞의 순항미사일을 장착하는 수준으로 중국에서 7000㎞ 떨어진 하와이 정도에 겨우 닿을 수 있다. 최근에 곧 실전 배치될 시안(Xian) H-20 초음속 스텔스 폭격기 개발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투행동반경 최소 8500㎞에 적재량은 최소 10t을 탑재할 수 있는 대형 스텔스 폭격기다.
유럽에는 프랑스가 닷소 라팔 전투기 기반의 전략폭격기를 개발 중에 있고, 영국은 미국의 B-52 전략폭격기 도입 및 운용을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중국·러시아 등 3대 핵보유국의 차세대 스텔스 전략폭격기 개발 경쟁이 매우 뜨겁다. 전략폭격기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함께 핵전쟁을 수행하는데 3대 무기체계로 꼽히기 때문이다. 적진 깊숙이 침투해 핵폭탄이나 미사일·순항미사일 등 공대지 무장으로 적의 지휘부를 비롯해 주요 군사 시설과 요충지의 인프라 등을 은밀하게 파괴하고 기선을 제압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되는데 대응 차원에서 북측의 도발을 사전에 통제하면서도 강력하게 억제하는데 효과적인 전략폭격기를 미국과 협의해 우리 공군이 도입한 후 한반도 내에서 전략적 운용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략폭격기 도입은 크게 세 가지 측면의 군사적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고 평가한다. 우선 우리 군의 독자적 전략자산 보유는 한국의 군사적 자율성을 대폭 높여 북한에 대한 독자적 억제 능력이 강화될 수 있다. 또 대량 무장 탑재가 가능해 전략거점 타격, 벙커 파괴 등 장거리 정밀타격 임무 수행능력을 대폭 끌어올리는 게 가능해진다. 단일 플랫폼으로 전투기 수십 대의 작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 자체 전략폭격기 보유로 미국의 확정억제 전략에 대한 부담을 경감시켜 줄 수 있고, 한국에게는 방위비분담금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협상 전략 카드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관세·안보 패키지 협상에서 미국이 원하는 미국산 무기도입 품목으로 고가의 전략폭격기를 구매한다면 미국도 만족스러울 수 있다. 한국 입장에선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비용 부담도 줄이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한반도, 전략폭격기의 전략적 유용성 높아
특히 전략폭격기 도입은 해군의 항공모함 도입과 같이 운용되는 공중전력인 함재기 등과의 전략적 실효성 비교 측면에서 훨씬 장점이 많다는 점이다. 속도와 도발 범위에서 폭격기는 긴급출력이 항시 가능하고 한반도 전 지역을 30분 내 도달 가능한 강점이 있다.
항공모함 공중전력은 이동시간이 수시간에서 수일이 걸릴 수 있다. 게다가 무장 탑재량에서 폭격기는 고정적으로 수십 톱(t) 이상인데 항공모함 공중전력은 탑재 전투기 출격 대수에 따라 제한적이다.
획득비용 측면에서도 전략폭격기는 수천억 원에서 1조 원대 수준인 반면 항공모함과 그 공중전력은 조 단위가 투입되는 막대한 건조·구매 비용은 물론 이를 유지하는데 엄청난 예산이 투입된다.
전략폭격기 도입이 전략적 효과와 운용 효율, 비용 대비 효과 등 항공모함 기반 전력 보다 실질적인 우위에 있다고 평가 받는 것은 이 같은 이유다. 게다가 항공모함은 해외 장거리 투사력이 필요한 국가에게 유리하고 한반도의 경우 단거리·중거리 폭격이 필요한 전장 환경에서는 폭격기의 전략적 유용성이 더 높다.
이런 까닭으로 전략폭격기 도입은 완제기 직도입 또는 기술이전 기반 공동개발 방식을 활용해 미국과의 관세·안보 패키지 협상 카드로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군 소식통은 “전략폭격기 도입을 계기로 미국산 핵심 기술을 포함한 공동개발은 한미 방산협력 심화를 비롯해 경제적 상호이익 증진, 방위비분담금 협상 등 다층전 외교전략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북핵·미사일 위협의 고도화에 대응하기 차원에서 억제와 응징 효과,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 증대, 평시에 강력한 무력시위 및 유사시에 적 전략거점 선제 타격력 보유 등 한국군은 강력한 전략자산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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