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전방위적인 관세 압박에 나서자 개인투자자들이 투자 자금을 단기 상품에 쌓고 시장을 관망하고 나섰다. 증시 전문가들은 금리·환율 불안, 중국 ‘딥시크’의 저가형 인공지능(AI) 모델 출시 등으로 시장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개인투자자들이 당분간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3일 투자자 예탁금은 58조 2317억 원으로 글로벌 증시 동반 폭락 직후 저가 매수세가 몰린 지난해 8월 6일(58조 9618억 원) 이후 6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예탁금 규모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기 직전인 17일까지만 해도 51조 2701억 원에 머물다가 그 이후에만 7조 원 가까이 급증했다. 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 계좌에 맡기거나 주식을 팔고 쌓아둔 돈으로 증시 대기 자금으로 분류된다.
최근 급격히 증가한 증시 대기 자금은 예탁금뿐만이 아니다. 머니마켓펀드(MMF)의 개인 설정액도 지난해 말 18조 1805억 원에서 3일 18조 5157억 원으로 3352억 원이 더 늘었다. 지난달 31일에는 개인 MMF 설정액이 18조 5377억 원까지 치솟아 지난해 9월 2일(18조 5648억 원) 이후 5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MMF는 양도성예금증서(CD)와 기업어음(CP), 만기 1년 미만 채권 등 단기 금융 상품에 투자하는 현금성 자산 펀드다. 수시로 돈을 넣고 뺄 수 있어 대표적인 증시 대기 자금으로 꼽힌다.
증시 대기 자금이 이같이 빠르게 늘어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관세 인상 압박이 곧바로 현실화되면서 환율·금리·물가 등 금융시장 전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 유럽연합(EU) 등 경쟁·우방국을 막론하고 관세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코스피지수도 3일 2.52% 급락했다가 이날 1.13% 반등하는 등 연일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개인은 이날 증시가 반짝 상승한 틈을 타 코스피를 2932억 원, 코스닥을 4100억 원어치 순매도하며 현금화에 나섰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시장이 당분간 트럼프 리스크에 휩쓸릴 것으로 보고 개인들의 매수세가 본격적으로 강해지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달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결정도 없어 한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변동성 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시장이 크게 충격을 받을 경우 일시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1500원까지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