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부과한 상호관세가 본격 시행되면서 글로벌 무역 질서가 대격변을 맞이하고 있다. 세계경제가 뒷걸음질치고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 가시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정책의 성과를 과시하며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7일 오전 0시 1분(현지 시각, 한국 시각 오후 1시 1분)부터 한국 15%를 비롯해 일본(15%), 유럽연합(EU·15%), 영국(10%), 베트남(20%), 필리핀(19%), 인도네시아(19%) 등 주요국에 상호관세를 매긴다. 상호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서 월가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일 7월 미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 관세 영향으로 6월보다 0.7포인트 하락한 50.1까지 낮아졌다는 소식에 뉴욕 3대 증시가 동반 급락했다. 고용·제조업에 이어 미국 경제의 70%가량을 차지하는 서비스업 지표까지 악화하자 투자심리가 빠르게 얼어붙었다. 예일대 예산연구소는 상호관세를 반영한 미국의 평균 실효 관세율을 18.3%로 계산하면서 대공황 시기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시행됐던 1934년대 이후 91년 만에 최고 수준이라고 짚었다. 더 나아가 현 관세율이 유지될 경우 미국 소비자물가가 단기적으로 1.8%포인트 오르고 가계 실질 소득은 가구당 평균 2400달러(약 333만 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또 소비 둔화로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올해와 내년 각각 0.5%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상호관세가 그대로 시행되면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0.2%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더 큰 문제는 관세전쟁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11일 유예 만료를 앞둔 미중 관세 휴전, 러시아에 대한 2차 관세 부과 여부, 추가적인 품목관세 추진 등이 경제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주요 경제지표들이 경고음을 울리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정책에서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중국과 무역 합의에 매우 근접했고 연내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르면 다음 주 정도에 반도체·의약품 등 품목별 관세를 추가로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합의를 맺지 못한 대만을 거론하며 “TSMC가 미국 애리조나주에 3000억 달러(약 416조 원)를 들여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 시설을 세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대만 언론은 미국 측이 △500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신규 추가 투자 △폭스콘의 미국 내 자동화 공장에 대한 1000억 달러 추가 투자 △미국산 소고기와 돼지고기 전면 개방 △TSMC와 인텔이 지분을 각각 49%, 51% 투입한 ASMC(미국 TSMC) 설립 등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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