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증시가 저비용 인공지능(AI) 모델인 딥시크 충격을 받은 가운데 증권가에선 국내 증시에 미칠 여파를 저울질하고 있다. AI 모멘텀이 지속될 가능성이 큰 만큼 딥시크 이벤트로 인한 조정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다만 일본은행(BOJ) 금리 인상으로 인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 재점화나 미국의 관세 부과 등 거시경제 변수를 조심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1월 24일) 대비 19.43포인트(0.77%) 내린 2517.37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지수도 0.45포인트(0.06%) 하락했다. 외국인은 지난달 31일 현물 시장에서 1조 2340억 원을 순매도했다. 지난해 9월 19일 이후 4개월 만에 최대 규모다. 외국인은 지난해 8월 이후 6개월 연속 순매도를 기록 중이다.
딥시크 출현으로 대규모 AI 투자가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SK하이닉스(-9.86%)나 삼성전자(-2.42%) 주가가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딥시크 추론형 AI 모델인 R1에 활용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이 고사양 제품일 필요가 없다는 관측에 HBM 선두업체인 SK하이닉스 주가가 더욱 크게 흔들린 것이다. HBM 관련 장비기업인 한미반도체(-6.14%), 피에스케이홀딩스(-6.57%) 등도 딥시크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전력기기 관련 업체인 효성중공업(-11.71%), HD현대일렉트릭(-7.87%) 등도 약세를 나타냈다.
딥시크가 국내 증시에 어떤 영향을 지속적으로 주게 될지는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AI 리더십 경쟁에 한국도 참전할 수 있다는 관점에선 긍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중국 반도체 제재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국 시장도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측면에선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AI 소프트웨어 기업은 AI 개발 비용이 저렴해지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만큼 수혜가 예상된다는 진단도 나온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딥시크 부각으로 미국 테크 부문의 증시 주도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향후 미국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테크 부문은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는지 여부가 중요한 만큼 꾸준한 투자 증가 여부를 주목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멕시코에 25%, 중국에 10%의 관세를 각각 부과하기로 한 만큼 한국 시장도 영향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관세 부과로 글로벌 교역량이 위축될 경우 수출 연관성이 높은 국내 기업 이익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삼성바이오로직스, SK하이닉스, 삼성전자, HD현대중공업, 기아, 현대차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 대부분이 해외 매출 비중이 70%를 넘어선다. 2018년 미국과 중국이 상호 관세를 부과하자 2019년 국내 수출이 전년 대비 10% 감소하고, 코스피 영업이익은 31% 줄어든 바 있다.
삼성증권은 2월 코스피 지수를 2400~2700선으로 내다봤다. 상장사 이익 전망이 하향 조정되겠지만 주가에 이미 반영된 만큼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주식시장 변동성 확대를 일시적 현상이라고 볼 수 없다는 진단도 나온다. 강현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 주식시장 변동성이 커진 것은 딥시크라는 단일 요인이 아니라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 미국 경기 악화를 반영한 장기물 금리 하락 등 복합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며 “미국 증시 하락으로 인한 한국 증시의 2차 하락 가능성도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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