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이 싸다고 아파트에서 한밤중에 세탁기를 돌릴 수 있겠습니까. 결국은 가정용 전기요금 부담이 더 커지는 거죠.”
정부의 계절·시간별 요금제 도입 등 전기요금 개편과 관련 제도 안착의 관건은 각 가정의 수용 여부다. 수십 년 동안 이어온 전기요금 제도가 혁신적으로 개편되는 만큼 전력 소비자의 동의를 구하지 못할 경우 유명무실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전력요금제 개편의 또 다른 축인 지역별차등요금제를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인천 등 일부 수도권 지역이 심각한 역차별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25일 한국전력 등에 따르면 올해 1~9월 주택용 전력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8% 늘어나는 등 전체 전력판매량 증가(0.8%)를 견인했다. 같은 기간 상가 등이 주로 쓰는 일반용은 3.2%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반면 지난해 11월 전기요금이 인상된 산업용 전력판매량은 1.6% 줄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이 산업용뿐만 아니라 주택용 전기요금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에너지 자립도가 낮은 우리 경제 여건상 필요한 만큼 최적의 시간대에 전기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요금제 개편이 요구된다”고 언급했다.
정부는 내년 도매시장, 내후년 소매시장에서 순차 적용되는 지역별차등요금제 도입을 계기로 2021년부터 제주 지역에 한해 시행 중인 계절·시간별 요금제의 전국 확대까지 함께 들여다보고 있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연말 전기사업법 전면 개정안을 내놓겠다는 목표로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계절·시간별 요금제 도입을 위한 계량 장치 등 시스템은 이미 구축이 완료됐다. 그간 산업용·일반용(상가 등)과 달리 주택용 전기요금은 실시간 전력량을 확인하기 어려운 탓에 계절·시간별 요금제 전면 시행은 유보됐었다. 하지만 한전의 원격검침인프라(AMI) 보급 사업이 14년 만에 일단락되면서 계절·시간별 요금제 시행을 위한 기반이 갖춰졌다. 한전은 최근 2010년 50만 가구를 시작으로 누적 2005만 가구에 대한 AMI 보급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AMI는 전력사용량을 한전에 15분마다 전송해 각 세대가 이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실시간 확인 가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다. 기업이 아닌 개인도 사실상 실시간으로 수요 관리를 통해 전기요금 부담을 덜 수 있게 된다. 정부와 한전은 계절·시간별 요금제가 전국에 확대돼 전기소비자의 선택권이 보장될 경우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비싼 주간 시간대에서 저렴한 야간 시간대로 전환해 전기요금 인하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와 한전은 주택용 전기요금 개편과 관련해 제주와 마찬가지로 소비자 선택에 맡기는 방식을 택할 예정이다. 강제화할 경우 피크시간대에 불가피한 전기 사용이 많은 가정의 반발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제주 지역에서 적용 중인 전기요금표를 보면 여름 및 겨울철 오후 4시~10시 최대부하 시간대 계절·시간별 요금은 220.5원으로 3단계 누진제 하단인 120.0원, 중단인 214.6원보다 높았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계절·시간별 요금제를 선택할 가구는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계절·시간별 요금제가 선제 도입된 제주의 경우에도 도입률이 0.5%(31만 9000세대 중 1600세대)에 그쳤다. 정연제 서울과기대 교수는 “누진제 전기요금이 워낙 낮아 굳이 계절·시간별 요금제로 갈아탈 유인이 없다”면서 “결국 계절·시간별 요금제 확대 역시 전기요금 정상화라는 고통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계절·시간별 요금제로의 개편이 지역별차등요금제와 맞물린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정부는 두 제도를 병행해서 새로운 전기요금 체계를 확립하고자 한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지역별차등요금제 도입으로 수도권 제조기업 부담은 최대 1조 4000억 원까지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인천의 경우 영흥화력발전소 등 발전원이 밀집돼 전력발전량이 많음에도 수도권으로 묶여 비싼 차등요금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인천의 최근 4년(2020~2024년) 평균 전력자급률은 186.3%에 달할 정도로 공급량이 수요량을 초과하는 상황이다. 류성원 한경협 팀장은 “산업부의 지역별 차등가격(LMP) 도입 기준을 보면 전력 수요가 많은 수도권의 요금을 높이고 공급이 많은 비수도권의 요금을 낮추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며 “단순히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차등요금제 적용을 나누면 인천 제조업체의 부담이 커져 반발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차등요금제 도입만으로는 전자·통신 등 주요 산업의 수도권 집중 현상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각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전력 수급을 개선하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전이 구축한 AMI에 대한 오류 등에 따른 개별 가정의 반발도 우려 요인으로 평가된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AMI 이용에 따라 발생하는 통신요금이나 전산상 오류 발생 등의 이슈 등도 해결해야 할 것”이라며 “전기요금 부담 경감을 위한 선의에서 시작한 계절·시간별 요금제가 부수 비용만 늘리는 꼴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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