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萬國)의 만국에 대한 투쟁이 일상화되고 있다.
글로벌 통상과 무역에 토머스 홉스가 그렸던 ‘리바이어던 체제’가 뿌리내리고 있다.
녹슨 민심을 자극하면서 보란 듯이 재집권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거창한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만국에 대한 무역 전쟁을 선포했다.
패권 경쟁에서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에 대해서는 최대 60%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벼르고 여타 국가에 대해서는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트럼프 2.0 시대에 한국의 대미 수출이 304억 달러(약 42조 원) 증발하고 총수출은 448억 달러(약 62조 원)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총수출의 8.0%가 사라지고 경제성장률도 최대 1.1%포인트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 경제의 주춧돌인 자동차가 1차 표적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해 ‘신종 녹색 사기’라는 레테르를 덧씌워 전면 폐기를 예고했다. 미국은 한국 자동차 수출의 50%를 차지한다. 10% 이상의 관세가 부과되고 전기차 보조금마저 없어진다면 현대차·기아 등 국내 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배터리 기업은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분야도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가 전방위로 확산되면 한국이 반사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기대 섞인 시각도 있지만 각국의 ‘반도체 쇄국’에 수출시장이 축소될 수 있다. 미국이 쏘아 대는 카우보이식 ‘보호무역 총탄’에 맞서 중국이 고율의 보복관세 카드를 꺼내들거나 첨단산업에 적용되는 원자재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도 내놓을 수 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글로벌 경제가 ‘너 죽고 나만 살자’는 ‘근린 궁핍화 정책(Beggar My Neighbor Policy)’에 매몰된다면 무역과 통상으로 성장을 이어가는 한국 경제는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 ‘무역 캐즘(Trade Chasm)’의 처절한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재무부가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1년 만에 다시 한국을 환율 관찰 대상국에 전격 지정한 것은 앞으로 휘몰아칠 풍랑을 예고하는 전주곡이다.
시장은 벌써 반응하고 있다. 미국 다우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나스닥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우고 있는 상황에서 코스피지수는 2500선을 힘없이 내주며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 한국 경제에 대한 확신을 거두고 있는 외국인들이 원화를 처분하면서 원·달러 환율도 1400원을 오르내리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돌파한 것은 4월 이후 7개월 만이다.
글로벌 경제가 한 치 앞도 예단할 수 없는 ‘시계 제로’ 상태에 놓여 있다. 세계 각국은 통상 전쟁을 벌이고 있고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는 영토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하고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 본토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허용하면서 확전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우리 경제의 숨통을 조여오는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서둘러 대응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는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
여당과 야당은 경제와 민생 법안은 내팽개치고 정쟁 싸움에 연일 고성과 삿대질이다. 친애하고 존경하는 ‘국민’은 없다. 국회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것이다.
대통령실과 정부라도 법안 통과가 필요 없는 기업 살리기 정책을 정교하게 짜야 한다.
‘다시 기업을 위대하게(MEGA·Make Enterprise Great Again)’ 기치를 내걸고 ‘MEGA 플랜’을 조속히 마련해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누구 누구를 구해야 한다’ 침을 튀기면서 정쟁 놀음에 빠질 여유가 없다. 가장 걱정해야 하는 것은 바로 민생이고 기업이고 경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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