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백약이 무효’라는 말이 어울릴 법하다.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은 7월 한 달 동안 7조 1660억 원이나 증가해 최근 3년 3개월 만에 증가 폭이 가장 컸다. 주택담보대출은 이보다 더 많은 7조 6000억 원이나 불어나 오름폭이 역대 최대였다. 은행들이 금융 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에 부응해 7월 한 달 동안에만 총 10회나 대출금리를 인상했지만 돌아온 결과물은 기대 이하라는 말도 부족한 지경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증가 수치가 너무 커서 내부에서도 사실 놀랐다”는 말을 전했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브레이크를 잃은 원인은 모두가 알고 있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가 19주 연속 오름세를 기록할 정도로 부동산 수요가 높아진 것이 그중 하나다. 9월 강화된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 전에 대출을 미리 받아두려는 ‘막차 수요’도 한몫했다.
무엇보다 디딤돌과 버팀목 등 저금리 정책대출상품이 가계대출 증가세를 이끌고 있다. 전문가와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여러 차례 지적됐다. 실제 올 들어 4월까지 마이너스 증가세를 이어가던 정책성 대출은 5월과 6월 각각 2조 원 이상 증가했다. 전 은행권의 주담대 증가액이 5월 5조 7000억 원, 6월 6조 3000억 원을 기록한 주요 원인이 정책성 대출이라는 점은 정부 스스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정부가 버팀목대출의 경우 한도의 30% 이하로 대출을 신청하면 0.2%포인트 우대금리를 제공하고 디딤돌대출도 한도의 30% 이하 대출 신청 시 금리를 0.1%포인트 깎아주기로 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은 것도 정책성 대출의 손질 없이는 가계대출 관리가 어렵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정책 효과가 발생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 가격 상승에 둑이 터진 듯한 대출 수요를 얼마나 억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에서는 수차례 대출금리를 인상했음에도 가계대출이 오히려 급증했다는 점을 주목한다. 금리가 0.1%포인트라도 오르면 차주로서는 부담이 매우 커짐에도 이를 감내하겠다는 것이 최근 대출자들의 심리라는 것이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은 ‘할 만큼 했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책 대출을 가계부채 급증의 원인으로 지목했다면 답은 간단하다. 정책 대출 대상과 한도를 과감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