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분 업계의 밀가루 가격 인하가 ‘생색내기용’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인하 대상이 소비자용 밀가루로 한정됐기 때문이다. 라면·빵 등 식품 제조 기업 대상(B2B) 밀가루는 제외돼 물가 인하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소비자물가 조사에서 밀가루에 적용하는 가중치는 ‘0.1’이다. 밀가루에는 1000원 중 0.1원만 지출한다는 의미다. 통계청은 한 가구의 총소비량을 1000으로 놓고 각 품목의 상대적 중요도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한 뒤 물가 상승률을 측정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이 소비자용 밀가루 가격을 최대 10%, 평균 6.6% 낮추기로 했지만 장바구니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사실상 미미한 셈이다.
장바구니에 가중치가 큰 식품은 빵·과자·라면 등이다. 빵은 가중치가 6.8에 달하고 과자(2.9), 라면(2.4)도 각각 2가 넘는다. CJ제일제당 등 주요 기업은 밀가루 가격 인하를 발표했지만 정작 라면·빵·과자 등 밀가루를 주원료로 쓰는 식품 제조 기업 대상 밀가루 가격은 제외했다. 물가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품목들은 밀가루 가격 인하의 혜택을 받지 못한 셈이다.
식용유 가격도 요지부동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달 6일 “최근 국제 곡물 가격이 2022년 고점 대비 절반가량 하락했으나 밀가루·식용유 등 식품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고물가를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소비자단체협의회도 “국제 대두유 가격이 지난해 3분기와 4분기에 20~30%씩 하락했는데 식용유 출고가는 0.3~3.8% 떨어지는 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대두유의 원재료인 국제 대두 가격도 내려갔다. 19일(현지 시간)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대두 선물 가격은 최근 월물 기준 1185.5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최고점이었던 지난해 6월보다 33.5%나 떨어졌다. 원자재 가격이 내려갔지만 식품에는 이를 반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제당업체들은 정작 서민물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설탕 가격 인하에는 노력하지도 않고 있다. 오히려 실제보다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 것으로 의심을 받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는 상황이다. 공정위는 제분 업계가 밀가루 가격 인하 계획을 발표한 날 CJ제일제당과 삼양사·대한제당 등 국내 제당 3개 업체에 조사관을 보낸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당·제분 업계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 식품 업계가 밀가루 가격을 인하한 것이 설탕 담합 조사에 대한 세간의 비판을 줄이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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