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원화 약세)하는 가운데 삼성전자 인수합병(M&A)이 외환시장의 숨은 리스크로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가 몸값이 최대 100조 원에 이르는 영국의 반도체 설계 업체 암(ARM) 인수를 확정할 경우 원화를 달러로 환전하는 수요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져 시장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28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 외환 당국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몇 달 동안 일명 ‘마 거래’로 통하는 시장평균환율(MAR) 거래에서 달러를 거의 내놓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 거래는 환율 급등락 리스크를 헤지하는 차원에서 매일 정해진 환율 범위 내에서 외환을 사고파는 방식의 거래를 뜻한다. 삼성은 통상 현물환 거래보다는 마 거래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의 마 거래를 통한 일평균 달러 공급량은 4억 달러 수준으로 추산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삼성이 올 들어 마 거래를 상당히 줄인 것은 사실”이라면서 “M&A에 대비해 달러를 풀지 않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삼성전자가 ARM 인수를 확정 발표할 경우 외환시장에도 상당한 파급력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10월 중 한국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ARM 매각 방안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이미 사전 협상이 완료된 단계라면 두 사람이 만난 자리에서 매각이 공식 발표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ARM의 몸값은 최소 60조 원에서 최대 100조 원까지 거론되고 있다. 삼성이 단독 인수가 아닌 지분 인수를 통한 전략적투자자(SI)로 나서더라도 최소 10조 원 이상 투자가 단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외환 당국의 한 관계자는 “해외 사업 비중이 큰 삼성전자의 특성상 상당한 수준의 달러를 이미 확보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며 “거래 규모에 따라 달러 환전 수요가 발생하더라도 적절한 대응책을 내놓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M&A 업계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해외 딜의 경우 고시환율에 따라 은행에서 송금을 해주면 거래가 완료되는 구조”라며 “제2의 금융위기까지 거론되는 특수 상황에서 ARM 인수와 같은 초대형 딜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아 환 전략을 짜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투자 대금 납입 기일을 통상 거래보다 미루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다는 전망 또한 나온다.
시장에서는 대우조선해양 매각 과정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흘러 나온다. 방산 사업을 갖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특성상 해외 기업에 문호를 열기는 어려웠겠지만 해외 재무적투자자(FI)를 일부 유치하는 방식으로 딜 구조를 짰다면 어느 정도 달러 유입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환율이 어느 선을 넘으면 시장 전체가 패닉으로 끌려 들어갈 수 있다”며 “공격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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