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올 겨울철 유럽연합(EU)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대규모 생산 차질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은 EU 경제가 충격을 받으면 우리나라까지 수출 둔화 등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28일 한국은행은 ‘러시아의 EU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 현황 점검’ 보고서를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러시아의 대(對) EU 가스 공급 전면 중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가운데 에너지 수요가 높은 겨울철 들어 재고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시장뿐만 아니라 EU 각국에서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축소 또는 중단 가능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만큼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차질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돼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본격화됐다. 지난달 러시아가 EU로 공급하는 천연가스 규모는 하루 평균 1억 3000만 입방미터로 2021년 하루 평균 3억 7000만 입방미터 대비 35% 수준까지 줄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자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 중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러시아는 표면적으로 루블화 결제 거부, 가스관 정기 점검 등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문제는 EU 경제의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다는 것이다. 2020년 기준으로 EU 경제는 전체 에너지 소비의 24%를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다. EU의 천연가스 사용량 가운데 36%가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물량이다. 체코(100%), 라트비아(100%), 헝가리(95%) 등이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고 주요국 가운데 독일(65%)이나 이탈리아(43%)도 높은 편이다.
특히 천연가스를 쓰는 산업 비중이 늘면서 가스 공급이 중단됐을 때 각국 산업에 상당한 생산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유럽 16개국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사용 용도를 살펴보면 주거용이 38.9%로 가장 많지만 산업용도 36.0%로 많은 수준이다. 산업별로 살펴보면 전력생산, 화학산업, 기초금속제조업, 시멘트·콘크리트 제조업 등이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다.
EU 지역 내 각국 정부가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 차질에 대비해 에너지원을 대체하거나 소비 줄이는 방안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단기적으로 공급 부족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한은 관계자는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과 이에 따른 EU 경제의 생산 차질이 현실화되면 우리 경제는 EU에 대한 수출 둔화, 에너지 수급 불안, 산업 생산 차질 등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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