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회계 감리 기한을 1년으로 명문화하겠습니다”
지난 2일 정부서울청사 3층, 금융위원회 기자실. 금융위 기업회계 담당자가 감리 ‘1년 원칙’을 발표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금융감독원 회계심사 담당자 눈동자가 잠시 떨렸습니다. 유독 어깨가 무거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한 정책을 놓고 두 기관 담당자 표정이 엇갈리는 걸 본 게 하루, 이틀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날 만은 그 차이가 유독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존에는 회계 감리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금융위의 이날 발표로 회계 감리 기한은 원칙적으로 1년이 됩니다. 실제 회계 감리 업무를 수행하는 금감원에게는 앞으로 감리 기한 ‘1년 원칙’이 절대 기준으로 작용할 겁니다. 감리를 시작했는데 1년을 넘기면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낙인 찍힐 수밖에 없게 된 겁니다. 물론 감리 방해 또는 피조치자의 자료 제출 지연으로 원활한 감리수행이 어려울 경우 금감원장의 사전 승인을 받고 6개월 단위로 연장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산업의 융복합 디지털자산 등 신기술의 등장으로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회계 처리 기준을 고려할 때 감리 기한을 일률적으로 1년으로 정하는 것이 과연 맞느냐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단적인 예가 셀트리온(068270)그룹 감리 건입니다. 분식 회계 논란이 빚어졌던 셀트리온그룹은 2018년 감리가 시작돼 4년 만인 지난 3월에야 ‘고의성이 없다’고 최종 결론 났습니다. 바이오 시밀러라는 그간 한국에서는 생소했던 산업의 회계 처리 문제를 따져 묻다 보니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는 게 중론입니다. 한편으로는 셀트리온그룹에 대한 장기간 감리로 인해 이번 1년 원칙 감리 기한이 명문화되기도 했습니다. 감리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서 4년 동안 분식회계 논란은 계속 불거졌고 이때마다 주가가 출렁이는 등 기업가치에 대한 불안감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금융위에 따르면 최근 4년 동안 총 225건의 감리가 진행됐습니다. 조사기간을 기준으로 볼 때 1년 이내 끝난 건 136건으로 61%입니다. 89건, 39%는 1년을 넘겼다는 뜻입니다. 단순화해 볼 때 10건 중 6건은 1년 내 끝낼 수 있을 정도로 순조롭게 감리가 진행됐지만 나머지 4건은 아니었다는 의미입니다. 앞으로 금감원은 이 4건을 1년 내에 끝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습니다. 일의 총 양은 정해졌는데 이를 빨리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인력을 더 투입하거나 업무 효율화를 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말은 쉽지만 막상 실행은 어려운 게 업무 효율화입니다. 결국 업무를 빨리 처리하려면 인력을 더 확충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물어봤습니다. 금감원의 감리 인원 충원 계획은 있는지 말입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증권선물위원회에서도 충분히 이야기가 나왔다”며 “감리 쪽 인력들이 많이 부족하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답했습니다. 공감대를 이룬 것과 인력을 확충한다는 답변은 엄연히 다릅니다. 재차 물었습니다. 확충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말입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권한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답변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금감원 담당자들 어깨가 왜 유독 무거워 보였는지, 눈동자가 잠시 떨렸는지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금감원의 감리 인력 확충은 해묵은 문제입니다. 갈수록 감리 수요는 늘어나고, 난이도도 높아지지만 이를 담당할 사람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정부가 자본시장 범죄 척결을 강조하면서 가뜩이나 적은 금감원 감리 담당자 중 일부는 유관 기관에 파견까지 나가며 인력 부족 문제는 더 심해졌다는 전언입니다. 마감 시한은 빠듯한데 일손이 부족하면 원치 않는 실수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금융위는 감리 기한 1년 원칙만 세울 게 아니라, 이를 가능하게 할 인력 확충 계획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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