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와 풍요, 안녕을 상징하는 모란은 삼국시대 이후 꾸준히 왕실의 사랑을 받아왔다. 모란은 궁궐 후원이나 귀족의 정원에 심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림이나 도자기, 병풍부터 귀한 신분의 여인들의 옷, 그릇, 가마에도 그려 넣을 만큼 무늬로도 즐겨 쓰였다. 민간에서는 모란이 상징하는 부귀영화의 염원을 담은 모란도가 크게 성행하며 민화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부귀와 아름다움을 상징해 온 ‘꽃 중의 왕’ 모란이 국립고궁박물관에 활짝 폈다. 오는 10월까지 열리고 있는 특별전 '안녕(安寧), 모란'이다. 모란도 병풍을 비롯해 궁궐의 그릇, 가구, 의복 등 모란꽃을 담은 각종 생활용품과 의례용품 등 유물 120여 점이 공개돼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시는 조선 왕실에서 모란을 어떻게 향유했는지 보여줌으로써 그 상징적 의미를 소개하는데 초점을 뒀다. 모란 무늬는 혼례복이나 가마와 같은 왕실 혼례에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총 2벌의 혼례복이 공개된다. 모란이 수 놓인 창덕궁 왕실 혼례복이 공개되기는 이번에 처음이다.
한 벌은 순조의 둘째 딸 복온공주(1818~1832)가 혼례 때 입은 것으로, 남아 있는 활옷(闊衣) 중 유일하게 제작 시기와 착용자가 명확하다. 나머지 한 벌은 창덕궁에서 전해 내려오는 활옷인데, 보존 처리 중 옷 속에서 겉감과 안감 사이에 넣은 종이심이 발견됐다. 옷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넣은 종이심은 1880년 과거시험 답안지를 재활용한 종이라는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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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에서는 왕실 인물의 마지막 배웅 길에도 모란을 썼다. 전시는 흉례의 절차마다 모란 무늬가 어떻게 사용됐는지를 각종 의궤, 교의, 신주 신여, 향로와 모란도 병풍을 통해 소개한다. 중심 유물은 단연 모란도 병풍이다. 모란이 뿌리에서 뻗어 올라가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그린 4폭 병풍과 8폭 병풍이 전시장 3면을 둘러싸고, 그 사이에 신주를 운반하는 가마와 향로, 의자가 전시됐다.
모란이라는 식물을 가꾸고 감상하며 그림으로 그려 즐기던 전통도 엿볼 수 있다. 관람객들은 올봄 창덕궁 낙선재 화계(花階·계단식 화단)에 핀 모란에서 포집해 제작한 향을 맡으며 빗소리, 새소리가 어우러진 정원에서 18~19세기의 대표적 모란 그림인 허련(1808~1832), 남계우(1881~1890)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김동영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이번 전시의 제목 '안녕, 모란'은 서로에게 안부를 물으며 건네는 인사임과 동시에 조선 왕실의 안녕을 빌었던 모란 무늬처럼 우리 모두의 안녕을 비는 주문"이라며 "이번 전시에 조선 왕실에서 모란을 사랑했던 마음을 정성껏 담아 전례 없는 전염병 속에서도 국민 모두가 탈 없이 평안하고 아름다운 일상을 되찾길 기원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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