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 악재에 휩싸인 한국 증시가 휘청거리고 있다. 기업 실적 및 수출 부진으로 기초체력이 허약해진 상황에서 일본의 수출 제재, 미국 금리 인하 기대 약화, 미중 무역분쟁 지연 등 외부 악재가 쓰나미처럼 몰려오자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형국이다. 증권가에서는 당분간 불확실성 속에 투심이 약해지면서 상승 동력을 찾기 어려운 우울한 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9일 코스피는 오전부터 급락세가 이어진 끝에 36.78포인트(1.78%) 내린 2,029.48로 주저앉았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투자가는 639억원, 개인은 752억원 규모를 각각 매도하며 하락세를 주도했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D램 현물 가격 반등을 계기로 반도체 업황 회복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정보기술(IT) 대장주 위주로 2조원가량의 주식을 사들였다. 지난 10거래일 연속 순매수 행진을 이어왔지만 이날 순매도로 전환하자 시장은 충격을 받았다.
외국인이 ‘팔자’로 돌아선 주요 원인으로는 일본의 수출 제재 강화 전망 등 대외 악재가 꼽힌다. 당초 오는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기대했으나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한 해결책 없이는 정상회담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의 관계 개선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음달 2일 일본 정부가 수출허가 간소화 대상인 ‘화이트리스트’에서의 한국 배제를 결정할 가능성이 큰 것도 불안 요소다. 노동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까지 한일 간 갈등이 주식시장에 미쳤던 영향이 투자 심리에 국한됐지만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는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으로 이어질 수 있어 더 부정적인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으로 일본에서 주요 제품을 수입해온 IT 소재 기업의 타격도 예상된다. 코스닥 시장에 대거 분포한 IT 소재 관련주가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불안감에 이날 코스닥지수는 25.81포인트(4.00%) 추락한 618.78로 마감했다. ‘검은 10월’로 불린 지난해 10월29일 5% 넘게 하락한 후 최대 낙폭이다. 종가 기준으로는 2017년 4월14일(618.24) 이후 2년 3개월 만의 최저치다.
미국의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 약화, 미중 무역협상의 장기화 전망도 외국인 매도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최근 미국의 2·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시장 예상치(1.8%)를 넘어선 2.1%로 나타나며 경기 침체 가능성이 둔화됐다. 이에 따라 30~31일(현지시간) 예정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통화정책회의에서 당초 기대보다 적은 25bp 수준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제기됐다. 추가 금리 인하 신호가 나오지 않을 경우 실망감에 증시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에 이날 홍콩·중국·대만 등의 신흥국 증시도 하락했으나 그 영향은 우리나라가 가장 컸다.
같은 시기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는 미중 고위급 협상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중국이 내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날 때까지 미중 무역협정 체결을 미루려 할 것”이라며 협상 타결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대내적으로는 2·4분기 실적 시즌을 맞아 자동차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한 전자·디스플레이·정유·철강 등 주요 업종의 간판 기업들이 줄줄이 어닝 쇼크를 기록하며 허약한 기초체력이 드러났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수출 감소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미중 무역분쟁 등 대외 악재 영향이 기업 실적 악화, 수출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며 “정부의 추경안조차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서 경제 심리를 반전시킬 뚜렷한 정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경훈·신한나기자 soco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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