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노조와 지역주의의 벽을 넘어 법인분할에 성공한다고 해도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기업결합심사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은 물론 유럽연합(EU) 등 최소 10개국에서 공정거래 당국의 심사를 받아야 하고 한군데라도 통과하지 못하면 합병은 물거품이 된다. 분할을 위한 주총 통과가 한발도 떼기 힘든 상황에서 현대중공업으로서는 첩첩수심이다.
30일 조선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분할 관련 주총이 노동계 전체 이슈로 확대되면서 기업결합심사 등 대우조선해양 인수 절차가 모두 멈췄다. 애초 현대중공업은 올해까지 대우조선해양 인수 절차 완료를 목표로 이달 중 공정거래위원회에 결합신고서를 제출한 뒤 오는 6월부터는 해외 각국에 결합심사를 본격 신청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법인분할이 지연되고 노조가 발목을 잡으며 계획은 늦춰졌다. 그만큼 대우조선해양 합병 이후 경쟁력 강화 등에 투입해야 할 힘을 엉뚱하게 분할에 쏟고 있는 셈이다.
새로 만들어질 지주회사는 현대중공업의 사업법인, 대우조선ㆍ현대삼호중공업ㆍ현대미포조선 등이 자회사로 편입돼 세계 최대의 조선 그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세계 선박 수주 점유율은 21.2%에 이른다. 특히 국내 조선 업계가 강점을 보이는 초대형원유운반선(VLCC)과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의 경우 점유율을 합치면 세계 시장의 72.5%, 60.6%를 차지한다. 자칫 독과점 논란이 불거져 나올 수 있다. 분할이 통과된다고 해도 기업결합심사는 중국ㆍ일본 공정거래 당국의 승인을 얻는 만만찮은 작업을 해야 한다. 한국과 경쟁관계인 이들 국가가 세계 1위 조선사의 탄생을 반길 까닭이 없다. 기업결합심사의 최대 난관은 EU 심사다. 현대중공업은 자문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EU와 실무접촉을 시작했지만 반독점 규정이 EU의 견제는 노골적이다. 앞서 유럽의 고위 경쟁당국자들은 한국 기자단과 간담회를 열고 해당 심사와 관련해 “소비자에 미치는 영향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쟁제한으로 선주 등 소비자 이익이 침해된다면 인수를 불허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발언이다. 각국의 반독점 여부 판단 기준은 시장점유율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체 조선 시장을 기준으로 삼을지, 특정 선종 관련 시장을 기준으로 할지가 관건이다. 전체 시장을 기준으로 하면 두 회사를 합친 점유율은 약 21%다. 하지만 한국 조선소가 압도적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LNG운반선 분야에서는 두 회사가 59.5%의 수주잔액을 갖고 있다. 두 회사가 결합했을 때 선가를 움직일 수 있는지도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선주들이 두 회사가 결합할 경우 선가가 상승할 것을 우려해 반대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이에 대한 반박도 적지 않다. 한 관계자는 “글로벌 조선업은 조선소보다 발주처인 선주들이 가격을 결정하는 시장”이라며 “발주가 부진한 상황에서 두 회사가 합친다고 선가가 올라갈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글로벌 기업들의 결합이 잇달아 무산된 것은 부담스럽다. 지난해 8월 미국 반도체 설계 회사 퀄컴은 네덜란드의 NXP반도체를 440억달러(약 50조원)에 인수하는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한국 등 8개 국가에서 승인을 받았지만 중국 정부가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 2월 EU 집행위원회는 세계 2위의 철도차량 제조업체인 독일 지멘스와 3위 업체인 프랑스 알스톰의 철도사업 합병을 불허했다. 한국 공정위도 2016년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 계획을 독과점 폐해 우려를 이유로 불허했다. /박한신기자 hs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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