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600개, 유럽연합(EU) 160개, 일본 724개, 한국 41개. 최근까지 본국으로 돌아온 유턴기업의 숫자다. 조사기간은 미국이 지난 2010~2016년, EU가 2016~2018년, 일본이 2015년인 반면 한국은 2012~2017년으로 긴 데도 비교가 안 되는 수치다. 그나마 국내에 돌아온 기업도 대부분 중소기업이고 대기업의 투자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 사례는 없었다.
2010년부터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한 미국은 현재 유례없는 경제 활황을 누리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법인세를 38%에서 28%로 낮추고 유턴기업의 공장 이전 비용을 20% 보조해줬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여기서 나아가 법인세율을 최고 21%까지 내리고 과감한 세제 지원책을 펼쳤다. GE와 피아트크라이슬러(FCA) 등 주요 제조업 기업이 미국으로 다시 생산기지를 옮긴 결과 17만1,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실업률은 2010년 9.6%에서 지난해 4.1%까지 줄었다.
일본도 ‘아베노믹스’의 일부로 국가전략특구에서 규제를 완화하고 법인세율을 30%에서 23.4%로 낮췄다. 도쿄·오사카 등 대도시로 돌아오는 기업에도 규제 혜택과 연구개발비를 지원했다. 완성차 기업인 도요타·혼다·닛산과 캐논 등 전자기업이 자국 내 공장 이전으로 화답했다. 일본의 3월 완전실업률(계절 조정치)은 2.5%로 20여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독일은 스마트 팩토리와 연구개발(R&D) 보조금으로 자국 기업의 유턴을 유도하고 있다. 법인세율 완화(26.4%→15.8%)와 규제 하나를 추가하면 하나를 없애는 정책도 추진했다. 아디다스는 2016년 23년 만에 본국으로 돌아와 신발을 생산하고 있다. 대만도 법인세의 단계적 완화를 통해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생산 업체인 폭스콘의 800억달러 투자를 이끌어냈다.
반면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매출 1,000대 제조기업 중 해외 사업장을 보유한 150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96%는 ‘국내 유턴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국내 유턴을 고려하는 기업은 2개사(1.3%), 국내 사정이 개선되거나 현지 사정이 악화할 경우 유턴을 고려할 수 있다고 답한 기업은 4개사(2.7%)에 불과했다. 국내 유턴을 고려하지 않는 이유로는 해외시장 확대 필요성 외에 국내 고임금 부담(16.7%), 국내 노동시장 경직성(4.2%) 등을 들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이들 기업이 유턴기업 확대를 위한 최대 과제로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29.4%)’를 꼽았다는 점이다. 유턴기업에 대한 비용 지원을 확대해달라는 응답은 절반 수준인 14.7%에 그쳤다. 오히려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해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27.8%로 더 많았다. 그 밖에 유턴기업 법인세 감면기간 확대(14.2%), 수도권 유턴기업에도 인센티브 허용(7.2%)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경연은 “국내 기업 유턴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경영환경 개선이 세제 등 직접적인 지원제도 확충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미중 무역분쟁을 국내 유턴 확대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이달 10일(현지시간)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으로 수출할 때 중국에서의 생산은 평균 관세 14.7%로 부담이 커진 반면 한국에서의 생산은 평균 0.4%의 관세가 부과돼 유리하다. 실제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이를 노리고 한국 내 생산 진출을 저울질하고 있지만 베트남 등에서는 “우리가 미중 무역분쟁 심화에 최적의 투자 대안 국가”라며 국내 기업에 적극 구애하는 상황이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미국의 대중 제재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활용하는 우리 기업의 대미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다”며 “중국에서 한국으로 유턴하는 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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