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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초호황' 뒤 '준호황'이냐, '불황'이냐

4개 포인트로 짚어본 초호황 다음 국면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모습. /서울경제DB




삼성전자가 스스로 올 4·4분기부터 내년 1·4분기까지 실적 약세를 예고한 가운데 초호황 뒤 찾아올 다음 국면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일단 시장에서 반도체가 정점을 지났다는 컨센서스가 이뤄지자, 그간 숱하게 제기됐던 ‘패러다임 전환론’은 묻히는 분위기다. 패러다임 전환은 말 그대로 메모리 칩의 수요처가 폭발적으로 늘어 통상 PC 교체 주기에 맞춰 메모리 시황이 4년을 주기로 부침을 거듭한 패턴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게 골자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라 불안감이 만연해 있는 상태다. ‘초호황’ 뒤 ‘불황’이 올지 아니면 ‘초호황’ 뒤 ‘준 호황’이 올지 몇 가지 포인트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①2019~2022년 전망을 보면 적어도 불황은 아니다=왜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말이 나오는지부터 봐야 한다. 일단 D램 시장부터 보자. D램 분야 글로벌 시장 규모는 지난 2013년(350억 달러, IHS마킷)부터 2016년 415억 달러까지 400억 달러 안팎을 왔다 갔다 했다.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규모가 커지긴 했지만 칩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지는 않았다. 그러던 것이 2017년 735억달러→2018년 1,068억달러(예상치)로 급증했다. 2017년 한해 성장률이 76.7% 올해는 45.3%로, 그야말로 ‘퀀텀 점프’를 했다. 2017년 이때를 기점으로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데이터 용량의 폭증과 빠른 처리를 요체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이 가시권에 온 것이다. 서버 투자, 스마트폰에서 칩 수요 증가는 물론 인공지능(AI), 전장 등 이전에는 없던 사용처까지 생긴 시점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눈에 띄는 것은 2019년 1,078억 달러→2020년 1,061억달러→2021년 1,057억달러→2022년 991억달러로 시장 규모가 여전히 1,000억달러 주위에서 맴돈다는 점이다. 2019년을 기점으로 시장이 꺾이긴 하지만 여전히 ‘준 호황’에 가깝다.

낸드는 심지어 2019~2022년 시장이 더 커지는 것으로 예측됐다. 2018년 626억달러→2019년 655억달러→2020년 732억달러→2021년 771억달러→2022년 801억달러 식으로 말이다. 전문가들의 예측이 틀릴 수 있다는 원초적 한계가 있는 점은 인정해야겠지만, 이 정도를 두고 불황이란 표현을 쓰기는 어렵다.

②삼성 반도체 4분기 실적도 역대 2위 퍼포먼스=증권사의 삼성전자 반도체 4·4분기 실적 예상치가 그렇게 비관적이지는 않다는 점도 주의 깊게 볼 대목이다. 영업이익의 경우 많게는 13조 2,000억원(NH투자증권·KTB투자증권 등), 적게는 11조 8,000억원(하이투자증권)을 제시하고 있다. 이 정도면 가장 낮게 영업이익을 제시한 증권사가 맞더라도 이번 3·4분기(13조 6,500억원)를 빼면 역대 최대치 실적이다. 약세로 반전해도 이전 최대치보다 적게는 2,000억원, 많게는 1조 6,000억원을 더 번다는 의미다. 업계의 한 임원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이 시장에 만연해 있다”며 “4·4분기 실적이 어느 정도까지 받쳐주느냐가 시장 여론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봤다

③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 수요가 따라줄 수 있을까=올 3·4분기에는 삼성이나 SK하이닉스나 메모리 가격 하락 폭보다 수요 증가 폭이 더 커 위기를 넘겼다. 메모리 가격이 떨어지자, 그간 가격 때문에 칩 사기를 주저했던 기업들이 칩을 더 샀다는 얘기다. 문제는 연말부터 내년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반적으로 경제 자체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추론해봐도 고 사양 메모리칩이 장착된 고가의 스마트폰 판매, 기업의 서버투자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에 대해 기업들은 저가의 스마트폰에도 칩 수요가 급증하는 등 모바일 수요가 줄지 않고 있고, 모든 업종이 4차 산업혁명의 영향권에 들어 칩 수요는 탄탄하다는 입장이다. 자동차 산업만 해도 자동차가 데이터 플랫폼으로 기능하면서 칩 수요가 폭증하는 상태다. 가전도 연결성이 강조되는 스마트 가전이 대세가 됐다. 이전처럼 경기가 나빠진다고 반도체 칩 수요 자체가 줄 것이란 추론이 통하기는 점점 어려워진 비즈니스 환경이 돼 가고 있다.

④치킨 게임 후 살아남은 기업들의 ‘생산 조정’ 약효 통할까=기업들은 이미 리스크 관리에 돌입했다. SK하이닉스는 투자계획을 연간에서 분기 기준으로 바꿨고 삼성은 ‘프로덕트 믹스(product mix)’ 전략을 쓰고 있다. 핵심은 라인 운영 효율화를 통한 생산물량 조정이다. 생산량 조정을 통해 메모리 가격이 급락하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 기업 뿐이 아니다. 도시바, 웨스턴디지털 등도 낸드의 신공장 라인의 투자를 미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등 반도체분야 최정점에 있는 기업들은 수년간의 치킨 게임에서 생존한 기업들이다. 그간 초호황의 과실을 누렸고, 앞으로도 대부분 가져갈 확률이 높다.

최근 마이크론을 보유한 미국이 중국의 D램 업체 푸젠진화에 반도체 장비·소재 수출을 하지 않기로 한 조치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 미·중간 무역분쟁을 빌미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낸드 부문에서 중국의 YMTC는 당장은 영향이 없어 보이지만 언제 푸젠진화의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

이번 조치에는 기존 업체들이 더 이상 ‘이너서클’에 올라탈 탑승권을 발부하지 않겠다는 ‘몽니’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치킨 게임 이전의 반도체 생산업체의 생산량 조정과 현 국면에서 조정은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중국이 우리 기업에 ‘가격 담합’ 등의 몽니를 부릴 가능성이 있는 점은 여전히 부담요인이다. 무역분쟁의 불똥에 대해서는 계속 긴장해야 한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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