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한 해 복지의무지출이 내년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 오는 2022년 140조원까지 급증하는 것은 단기간에 고령 사회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기초생활보장 급여(생계·의료·주거 등)와 국민연금 등 4대 연금(국민·사학·공무원·군인) 지급 확대를 통해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해야 하기 때문에 복지지출 확대는 필연적이다.
다만 복지의무지출이 다른 분야와 달리 한 번 확대되면 수혜 당사자들의 저항이 커 이전 상태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확대 속도에 전문가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외적으로 국가신인도를 평가받는 재정관리 지표가 악화하는 점도 부담이다. 정부가 복지의무지출의 불가역성을 고려해 재정지출 확대 속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마련해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총 재정지출 470조5,000억원 가운데 의무지출은 241조7,000억원, 재량지출은 228조8,000억원이다. 지난해 의무지출(217조원·추경 포함)이 재량지출(215조7,000억원) 규모를 처음으로 넘어선 후 격차가 1년 만에 더 크게 벌어졌다.
의무지출은 국가재정법에 따라 정부가 쓸 곳과 규모를 정해놓은 지출이다. 이 중에서 복지의무지출은 4대 공적연금과 각종 기초생활보장 급여, 노인 기초연금과 영유아 보육료 등에 들어가는 예산이다. 한 번 정하면 줄이기가 쉽지 않다.
의무지출 중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복지의무지출이 이러한 의무지출 증가를 견인하고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3년 58조4,000억원이었던 복지의무지출은 올해 98조원까지 5년 만에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내년에는 이 규모가 109조4,0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후로는 △2020년 117조5,000억원 △2021년 129조3,000억원 △2022년 141조6,000억원으로 증가한다. 한 번 늘리면 다시 줄이기 어려운 ‘경직성 예산’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이다.
복지의무지출 증가에는 4대 공적연금, 그중에서도 국민연금 지출이 늘어나는 게 가장 크게 작용한다. 기획재정부는 국민연금 급여 지급 규모가 올해 21조2,000억원에서 내년 23조3,000억원으로 10%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심각한 저출산 탓에 아동수당지출이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상쇄하더라도 복지의무지출이 순증하는 것이다. 이밖에 건강보험(기금+일반)이 7조2,000억원에서 7조9,000억원, 기초연금은 9조1,000억원에서 11조5,000억원으로 크게 늘어난다. 기초생활보장도 의료급여가 5조4,000억원에서 6조4,000억원으로 늘어나는 것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10조7,000억원에서 12조3,000억원으로 증가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복지의무지출 중 비중이 가장 큰 공적연금 규모가 늘어나고 각종 급여의 지급 단가도 올라가도록 설계돼 있어 전체적인 의무지출이 늘어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2015년 추산한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2060년까지 총지출은 연평균 4.4% 증가하는 데 비해 의무지출은 이보다 1.1%포인트 높은 5.2%의 증가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현 정부 들어 복지 분야의 재정 지출이 확대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증가폭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향후 5년 정부의 재정운용계획을 감안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38.6%에서 2021년 40.9%, 2022년 41.6%까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정부가 2021년 40.4%를 예상했던 것보다 빠른 상승세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폭도 올해 1.6%에서 같은 시점 2.9%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태준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현 정부가 마치 최저임금 인상하듯 재정건전성을 생각하지 않은 채 재정 지출 확대 일변도로 가는 것은 우려스럽다”면서 “4~5년 뒤 심각한 재정 압박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차기 정부의 재정 활용 여력이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세재정연구원도 “저성장 국면과 의무지출 비중이 증가하는 여건에서 재정 지출보다 수입 측면에서 불확실성이 더 크다”면서 “지출 확대에 대한 의사결정은 정확한 세수와 수요 전망에 따라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김영필·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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