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3개월 장고 끝에 면허 유지 결정=김정렬 국토부 2차관은 “항공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근로자의 고용불안, 소비자 불편, 소액주주 손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진에어의 면허를 취소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불법 사내이사 등재 사실을 인지한 후 4달 가까이 시간을 끈 끝에 결론을 내렸다. 사실 법리적으로만 놓고 보면 면허 취소 사안이다. 미국 국적의 조 전 전무는 2010년 3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진에어 등기이사로 재직했다. 그런데 2012년 개정된 항공법은 외국인의 임원 선임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개정된 항공법 역시 시행 전 면허 결격 사유가 발생한 경우 기존 항공법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토부가 대형 로펌 3곳에 법률자문의 의뢰한 결과 2곳이 면허 취소 사안이라고 판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국토부의 결정은 달랐다. 장기간 정상 영업 중인 항공사의 면허를 취소하게 되면 대량 실업 발생, 소비자 불편, 투자자 손실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고 판단했다. 청문 과정에서 진에어가 외국인 임원 등재의 불법 여부를 인지하지 못한 점과 현재는 결격 사유가 해소된 점도 반영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신규노선, 기자재 도입은 제동=국토부는 ‘갑질 경영 논란으로 일으킨 사회적 물의’에 대해서는 적절한 응징을 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일정 기간 신규 노선 허가 제한 △신규 항공기 등록 제한 △부정기편 운항허가 제한 등이 대표적이다. 면허 유지 결정에 따른 진에어의 경영상 이익이 대주주인 한진칼을 통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포함한 오너 일가로 이어지는 것을 막겠다는 논리다. 이 조치로 진에어의 경영상 타격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저가 항공 업계 1·2위를 다투고 있는 제주항공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진에어는 국제선 30개 노선(올 7월 기준)을 포함해 총 34개 노선에서 26대의 항공기를 운영하고 있다. 총 54개 노선을 운영 중인 제주항공은 현재 36대인 항공기를 연말까지 39대로 늘리며 진에어와의 격차를 벌릴 태세다. LCC들이 기존의 중거리에서 장거리 노선으로 활로를 모색하는 추세인 점을 고려하면 진에어로서는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 업계 관계자는 “하와이와 케언스 등 다른 LCC들이 갈 수 없는 곳에 비행편을 띄우는 게 진에어의 가장 큰 강점이었다”며 “앞으로 후발 주자들이 장거리 노선으로 영역을 확대하면 진에어가 곤란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진에어는 한진칼이나 대한항공으로부터 경영 독립성을 강화하고 이사회 중심의 의사결정 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 빠른 시일 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신규 허가 제한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당국 책임소재·한진그룹 오너 일가 수사 영향은?=불법 등기이사 재직을 걸러내지 못한 국토부에 대한 비판 수위는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진현환 국토부 항공정책관은 “국토부도 통렬히 반성하고 있고 관련 내용에 대한 내부 감사가 막바지에 있다”면서 “9월 중으로 항공 정책 전반에 대한 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관련자에 대한 제재 수위도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진 정책관은 이어 “외국인 임원 금지 등 조항에서 항공법이 내부에서 모순되는 조항이 있다는 지적 역시 국제적인 기준을 살펴 제도개선을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진에어의 면허 유지가 한진그룹 오너 일가에 대한 사정 당국의 수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조 회장을 포함해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 등 오너 일가에 대한 수차례의 구속 영장이 기각되면서 ‘봐주기식 수사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이번 결정이 나왔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국토부의 진에어에 대한 면죄부로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거세지면 사정 당국이 받는 압박 역시 더 커질 수 있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세종=강광우기자 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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