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오는 2040년 복지국가 완성을 위한 ‘사회보장2040’을 준비하고 있다. 참여정부 때 국가 미래전략을 담은 ‘비전2030’의 업그레이드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복지에 대한 전체적인 밑그림만 담긴다. 복지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노인에 대한 세세한 내용은 들어가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5년 12.8%였던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35년 28.7%, 2065년에는 42.5%로 급증한다. 이에 맞춰 관련 예산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도 아직 노인에게 특화된 새 정부의 구체적인 로드맵은 없는 셈이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10월에 ‘사회보장2040’의 초안이 나올 텐데 거기에는 왜 우리가 긴 안목을 갖고 복지정책 로드맵을 내놓아야 하는지만 들어갈 것”이라며 “노인도 분명 다뤄야 하는데 노인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까지 나오려면 추가 용역을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인의 개념을 바꾸는 데는 사회 전체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당장 노인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또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 조정이나 정년 문제처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굵직한 사안들이 많다. 여기에 통계 기준에 따라서는 2065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46.2%까지 상승한다. 국민 두 명 가운데 한 명가량은 노인인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접근방식과 달리 노인층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종합대책인 ‘노인판 2040’이 나올 때가 됐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 노인의 정의를 새로 하기 위한 방안에는 노동시장 개혁안부터 담겨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스위스 은행인 UBS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전체 139개국 가운데 83위다. 스위스와 싱가포르가 1·2위였고 미국은 4위, 영국은 5위였다. 일본은 21위이고 중국도 우리보다 앞선 37위였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은 특히 노인층에게 직격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고령이라는 특수성상 50대에는 34.6%인 비정규직 비율이 60대에서는 61.6%로 치솟는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고령 인구는 이미 은퇴한 이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영속성이 있는 일자리보다는 임시직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고용이 유연해야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강조했다.
정년 문제도 풀어야 한다. 올해부터 300인 이하 사업장에도 60세 이상 정년이 도입됐는데 노인 나이를 올리게 되면 정년도 그에 맞춰 높여 잡아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큰 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임금체계도 개편해야 한다.
연금체계도 관건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민연금을 비롯한 4대 연금의 총지출은 지난해 35조원에서 2025년 75조원으로 2.1배로 증가한다. 특히 국민연금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본격적으로 연금을 받기 시작하면서 2025년 국민연금 수급자만도 645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부터 2025년까지를 따지면 보험료 수입 증가율(5.3%)보다 지출 증가율(10.7%)이 높아 조기 고갈이 우려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해외처럼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더 늦춰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미국은 2027년까지 공적연금 지급 연령을 67세로 높일 계획이다. 영국은 2028년까지 67세, 프랑스는 2022년까지 67세로 조정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2033년에 65세가 된다. 국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다른 나라들도 연금 지급 연령을 조정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점을 생각하면 연금 수급 연령을 늦추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인과 관련된 중장기 계획을 짤 때는 4차 산업혁명 진행속도를 고려한 노인 지원체계 변경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을 감안하면 재가 서비스 같은 노인복지의 기존 틀을 바꿔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자율주행차는 의료시설이 먼 곳까지 노인들의 거주 반경을 넓힐 수 있고 이동 가능 거리를 늘려준다. 실제 일본 기업 소프트뱅크는 오지에 살고 있는 노인층이 이용할 수 있는 자율주행 버스를 개발 중이다.
의료계의 반대에 꽉 막혀 있는 원격진료 방안도 향후 급증하는 노인 인구 비중을 고려하면 단계적 추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원격진료를 통하면 예방진료를 강화해 건강보험재정을 아끼고 전체적인 의료비 수준도 낮출 수 있다”며 “무조건 원격진료를 반대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에 뒤떨어질 수 있는 노인을 위한 정보격차 해소 프로그램도 필수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0년까지 72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지만 같은 기간 2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일자리가 신설되는 분야는 재무관리와 경영관리, 컴퓨터 및 수학 등으로 제한돼 있다.
/세종=김영필·이태규기자 susopa@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