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립과학원(NAS)과 국립의학원(NAM)이 인간 유전자 편집 기술의 과학·윤리·제도적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2015년 결성한 국제 전문가위원회는 14일(현지시간) “엄격한 조건과 감시가 있다면 초기 배아 등 인간 생식세포에 대한 유전자 편집 연구를 허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실제 임신을 위한 배아 편집은 여전히 불허하지만 기초 연구를 위해 실험실에서 인간 배아 및 생식세포를 변경하는 것은 합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위원회는 2015년 12월까지만 해도 “안전과 효능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인간 배아에 유전자 편집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라고 선언하는 등 보수적 태도를 취해왔다. 과학계는 위원회의 이번 결정으로 인간 유전자 편집과 관련한 연구가 더욱 빠르게 발전하리라 내다보고 있다.
유전자 편집은 비정상 단백질을 생산하는 등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유전자를 잘라내거나 정상 유전자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기법을 뜻한다. 유전자 교정을 통해 희귀 유전 질환 및 암 등을 치료하려는 과학자들의 도전은 이미 1990년대부터 수없이 이뤄지고 있을 정도로 해당 연구 자체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2013년 3세대로 불리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가 개발되며 상황이 달라졌다. 정밀한데다 상대적으로 비용도 저렴한 편집 도구의 등장은 인간 유전자 교정을 통해 불치병을 치료하겠다는 구상을 ‘불가능’에서 ‘가능’의 영역으로 가져왔고 관련 연구가 세계적으로 폭증했다.
급기야 2015년 4월 중국의 과학자들은 인간 수정란에서 빈혈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제거하고 정상 유전자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수정란 등 생식세포를 교정하는 것은 환자 한 명에게만 영향을 주는 체세포 편집과 달리 미래 세대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연구를 삼가야 한다는 과학계의 암묵적 동의가 깨진 것이다. “과학적 진보는 인간 생식세포에서의 유전자 편집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만들었다. 이제 우리는 의료 관광이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현행 ‘금지’ 조치가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고 봤다”는 위원회 측의 부연 설명은 이 같은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위원회는 지능·신체 능력 향상 등 ‘인간 강화’를 위한 목적으로는 결코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못 박았다. 윤리적 이슈를 고려한 결정이다. 하지만 두 영역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점에서 우려는 남는다. 일례로 자폐증을 일으키는 유전자로 알려진 ‘GRIN2B’의 경우 높은 인지 능력과도 관련 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자폐증을 예방하기 위해 유전자를 교정할 경우 결국 인지 능력을 향상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의미다. 위원회 측은 “이번 권고안은 대다수가 윤리적으로 불가침하다고 생각한 선을 넘어선다”고 인정하면서도 “유전자 편집 연구는 국제적 협업이 필요한 분야인 만큼 모든 국가의 잠재적 임상이 적절한 감시·규제의 대상이 돼야 한다. 이번 조정이 국제 규제의 일관성을 높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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