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은행이 적자전환을 우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상 첫 적자를 계기로 안팎으로 수은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는 국책은행 쇄신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수 있다. 아울러 수출기업 지원이 핵심사업인 수은이 적자를 낼 경우 세계시장에서 통상마찰의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물출자가 아닌 현금지원이 수은에 예기치 못한 고민거리를 던져준 셈이다.
정부는 당초 도로공사 주식 등 공기업 주식을 통한 현물출자를 추진하다 이를 현금출자로 급선회했다. 현물출자가 현금을 통한 ‘긴급 수혈’로 바뀐 것은 그만큼 정부가 수은의 건전성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현금출자 1조원은 수은 역사상 최고의 현금출자금액이다.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우리나라 수출이 급감하면서 수은의 재원 지원이 커졌을 때도 수은의 현물출자는 1998년 1,000억원, 2009년 5,500억원이었다.
현물출자를 포함한 전체 출자 규모도 올해가 역대 최대다. 수은은 5월 산은에서 5,000억원의 현물출자를 받은 데 이어 1조원 현금출자가 결정되면서 올해만 1조5,000억원의 출자를 받게 된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현금과 현물을 합쳐 1조500억원을 출자했던 것과 비교해도 50%가량 많다. 정부 관계자는 “현물출자뿐 아니라 출자 규모에서도 정부가 역대 최대 수준의 지원을 하는 것은 그만큼 수은의 건전성 제고 필요성에 대한 정부의 의지 표현”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현금출자로 긴급 수혈을 하다 보니 수은의 부담감도 커지고 있다. 당초 계획대로 현물출자로 진행되면 장부상 국제결제은행(BIS)비율만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정부가 현금을 직접 쏴주는 현금출자의 경우 충당금 적립을 피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수은이 당초 정부 출자가 아닌 코코펀드 발행 등 내부적 해결책을 강구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결국 수은이 정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연내 조선업 등 취약업종에 대한 충당금 적립이 필요한데 이 경우 적자전환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STX조선이 5월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수은은 이미 올해 2·4분기 1조원에 육박하는 충당금을 추가로 적립했다. 문제는 대우조선이다. 정부가 역대 최대치를 현금으로 쏟아준 상황에서 대우조선 충당금을 반영해야 한다는 게 수은 안팎의 시선이다. 수은은 대우조선 익스포저를 정상(0.85%)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를 다음 단계인 요주의로만 반영해도 6,500억원에 가까운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이외에도 자구안을 제출한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익스포저가 각각 5조7,738억원, 4조3,289억원에 달한다.
BIS비율도 골칫거리다. 지난 1·4분기 기준으로 수은의 BIS비율은 9.9%로 떨어졌다.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목표치인 10.5% 이상으로 맞추기 위해서도 1조원가량 필요하다. 수은이 한 해 자체적으로 버는 수익은 1조3,000억원 안팎에 불과하다. 결국 정부 현금출자 1조원을 고려하더라도 BIS비율 제고와 충당금 적립 부담을 합치면 적자전환은 불가피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은은 IMF 경제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흑자를 지켜냈다. 적자는 수은의 40년 역사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더 큰 문제는 구조조정에 대한 국책은행의 책임론이 뜨거운 상황에서 정부의 수혈에도 수은이 건전성마저 지켜내지 못하면 역할론에 대한 시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출범 후 40년 만에 처음으로 수출금융지원액이 전년 대비 축소되면서 수은의 역할에 한계가 온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어온 와중에 적자전환까지 겹치면 수은의 역할론에 대한 재정립 필요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외부적으로는 통상마찰로도 이어질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출신용협약에 따르면 수은과 같은 정부기관이 자국 산업 지원을 위해 적자를 감수하는 것을 무역질서 왜곡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수은이 적자를 내면 국제적으로 한국은 국책은행을 동원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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