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문제의 핵심은 환율이다.” 5%대의 높은 시중금리와 원화 강세로 시중에 달러화가 넘쳐나고 있다. 올 들어 해외차입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자본수지는 지난 4월까지 90억달러에 육박하는 흑자를 냈다. 가뜩이나 늘어난 유동성에 더해 국내에서 해외로 나가는 돈보다도 해외에서 국내로 유입되는 돈이 훨씬 많았던 셈이다. 홍순영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과잉 유동성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고평가된 원화 가치 정상화가 선결 과제”라고 조언했다. 글로벌 유동성 급증에서 파생된 국내 과잉 유동성을 잡기 위해서는 외환시장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시스템부터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달러화가 넘쳐난다=지난 97년 204억달러에 그쳤던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5월 말 현재 2,507억달러로 급증했다. 장기 지속된 경상수지 흑자에 더해 근래 해외차입이나 해외채권 발행 증가로 자본수지가 늘어나면서 달러화가 빠른 속도로 국내에 흡수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1~4월 해외자금조달액은 지난해의 137억달러에서 올해는 176억달러까지 늘어났다. 특히 이 가운데 70%가량이 달러화로 유입된 자금이다. 국내 채권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아 대규모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은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이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면서 단기 자금에 이어 중장기 자금까지 외화유입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달러화가 넘치면서 원화 가치는 수년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원ㆍ달러 환율은 2005년 평균 달러당 1,024원에서 지난해에는 955원, 올해는 평균 920원대로 하락할 전망이다. 달러화 못지않은 엔화 약세로 원ㆍ엔 환율도 100엔당 800원을 밑돈 지 오래다. ◇원화 ‘나 홀로’ 강세가 자본유입 부추겨=이 같은 환율 하락은 원화 가치의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켜 해외자본 유입을 부추긴다. 박원암 홍익대학교 교수는 “원화의 나 홀로 절상은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자본유입을 촉진시켜 원화 절상을 한층 가속화한다”며 “원화 절상을 기대하는 해외자본이 유입될 때 적극 대처해 절상 기대를 불식시키든지, 외환시장의 개입 없이 원화를 절상시켜 추가적 자본유입의 유인을 제거하든지 정책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엔화에 대한 상대적인 강세로 엔 캐리 자금의 유입 속도로 빨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된다. 이성호 산은경제연구소 연구원에 따르면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 수준과 화폐 가치로 인해 국내로 유입된 엔 캐리 자금이 늘어나면서 지난 2년 동안 국내 유가증권 투자나 엔화 차입 등의 형태로 유입된 엔화 자금은 약 6조8,000억원 규모이다. 올해부터 엔화가 강세로 돌아설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 달리 일본 금융당국이 저금리를 유지하고 엔화 저평가 상태가 지속되고 있어 국내로 유입되는 일본발 유동성은 앞으로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자연스러운 자본유출 물꼬 터줘야=금융연구원은 해외자본 유입에 따른 자산 버블 가능성과 원화 절상 압력을 해소하기 위한 ‘시장친화적’인 외환관리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신용상 연구위원은 “증권사가 폐쇄형 원화표시 뮤추얼펀드를 발행, 시중의 원화를 흡수하면 한국은행이 풍부한 외환보유액을 이용해서 달러화로 교환해 주고 뮤추얼펀드는 그 달러화를 해외 장기상품에 운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같이 해외투자를 촉진함으로써 과잉 유동성과 환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해외투자 촉진을 통한 자본유출 유도 역시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해온 대책이다. 문제는 무리한 자본유출에 따른 부작용 없이 외환시장과 유동성의 ‘쏠림’을 바로잡는 것. 박 교수는 “자본유입에 따른 원화 절상을 막기 위해서는 자본유출 대책을 수립해야 하지만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면 해외 부동산 투자를 통한 자본도피 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글로벌 불균형 상태의 조정 가능성에 대비하고 원화의 급격한 절상을 막으려면 자본유출을 통해 외환보유액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해외투자 급증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경상수지 흑자 유지로 원화 가치 적절 수준 유지 ▦급격한 환율변동 방지 ▦단기외채 방지 및 외국인 장기투자 유치 위한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이미 금융정책이 딜레마에 빠진 상태에서 금리인상과 같은 매크로 정책으로 유동성을 잡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장기적인 금융시스템 선진화를 통해 채권시장ㆍ주식시장 활성화와 해외 자본유출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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