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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신한금융에 비해 전반적으로 좋았지만 지금은 볼륨이라든지 이익이라든지 여러 지표에서 뒤처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달 30일. 1박2일간의 일정으로 경기도 소재 KB국민은행 일산연수원에서 진행된 '2015년 KB금융그룹 경영진 워크숍' 행사의 분위기는 윤석 삼성자산운용 부사장의 한마디 코멘트에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윤 부사장은 '외부에서 바라본 KB'라는 주제로 강연을 맡았고 그가 신한에 여러모로 뒤처져 있다는 현실을 지적하자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을 포함한 각 계열사 대표·임원 등의 화기애애해 보이던 얼굴은 굳어졌다.
이날 행사는 윤 회장이 새 진용을 갖추고 진행한 사실상 첫 워크숍이다. 임원을 포함해 86명이 함께했다. 일부는 승진했고 일부는 외부에서 새롭게 수혈된 임원들이었다. 새로운 얼굴들끼리 축하인사를 하며 정다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자리였던 셈이다.
하지만 윤 회장은 당일치기로 진행하려던 경영진 워크숍을 급하게 1박2일로 변경했다. 단순히 인사하고 마는 자리가 아니라 '리딩뱅크'의 지위를 탈환하기 위해 KB가 한몸이 돼 머리를 싸매자는 신호를 내보낸 것이다.
경영진 워크숍에서는 임원들의 분임토의가 주가 됐다. "워크숍 일정이 너무 치열하고 빡빡하다"는 말이 곳곳에서 나올 정도로 분위기는 진지했고 토론에 토론이 거듭됐다. 한 계열사 임원은 "오후2시부터 올해 그룹 사업 추진 방향에 대해 설명을 듣고 외부 인사 강연과 분임 토의, 회장의 최종 요약 등 화장실 갈 시간 외에는 1분도 쉴 수가 없었다. 정말 피곤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밀도 높게 진행된 토의 시간에는 신한금융이 자주 화제에 올랐다. KB로서는 자존심 상할 만하지만 라이벌을 이겨내지 못하면 부활할 수 없다는 것을 임원들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워크숍에 참석한 임원들은 공식적인 일정을 마무리하고도 숙소에 돌아가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소속과 직위를 막론하고 토의를 이어갔다. 윤 회장도 임원들의 숙소를 깜짝 방문해 KB금융의 재도약을 주제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윤 회장은 내정자 시절부터 신한금융을 2년 내 따라잡자는 의지를 임원들에게 전달한 바 있다. 이날 워크숍이 1박2일로 진행된 것도 신한금융처럼 계열사 임원 간 스킨십을 강화하기 위한 일환이다. 신한금융은 임원 워크숍을 한 번 하면 1년치 식사·골프 약속을 잡을 정도로 단결력이 좋다.
한 관계자는 "윤 회장은 워크숍에서 스킨십을 강조했다. 계열사 간 일치단결이 리딩뱅크 탈환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면서 "외부 컨설팅사들도 새로운 회장이 은행을 겸직하고 있는 만큼 계열사 간 협업이 기존보다 더 잘 될 수 있는 기회라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리딩뱅크로의 부활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어느 때보다 강했다. 임원들은 △자산관리(WM) △기업투자금융(CIB) △글로벌 △보험시너지 △핀테크 △소비자금융 등 최근 금융권에 화두가 된 주제들에 대해 분임 토의를 진행하면서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맥킨지·베인앤컴퍼니 등 컨설팅사에서 해외 선진사례를 벤치마킹한 자료들을 설명하고 임원들은 이를 어떻게 중장기적으로 개발·발전시킬 것인지 얘기를 나눴다. 한 참여자는 "계열사 임원들을 섞어놓고 조를 만들어 발표하고 질의응답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면서 "머리 아픈 질문들이 계속됐기에 전 임원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여자는 "핀테크에 대해 확실히 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 오고 갔으며 WM·CIB 부문에서 여력이 있으니 이를 더 발전시키자는 얘기도 나왔다"고 전했다.
윤 회장은 경영진 워크숍을 정리하며 계열사 대표·임원들뿐만 아니라 실무진 선에서도 실무자협의회·소위원회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각 계열사의 업무는 최대한 사장들에게 책임을 맡기겠다고 약속했다.
무거운 자세로 임한 워크숍이었지만 계열사 대표·임원들의 반응은 희망적이다. 한 참여자는 "KB금융의 1월 실적이 가시적으로 좋게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11월이 지나면서 지배구조도 안정을 찾고 실적도 개선되는 모양새"라면서 "이번 워크숍에서 계열사 간 전략을 공유하고 앞으로의 비전을 토론한 만큼 올해는 예년에 비해 전망도 밝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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