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로 이명박 정부의 경제 운용 로드맵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13일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에 따르면 감세와 규제 완화, 공기업 민영화, 대외 개방, 재정 건전성 제고 등 새정부의 기본 아젠다들이 금융 위기에 잇달아 발목이 잡히고 있다. 경기 둔화가 본격화되고 국제금융시장이 살얼음판을 걸으면서 성장보다 안정 위주의 경제 운용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야당은 물론 여당도 정책 기조의 수정을 압박하고 있어 MB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정책위원장을 지낸 이한구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금융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종부세 완화 유예 등 정부의 감세정책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기침체 위험이 앞으로 어느 정도, 어느 시기에, 얼마만큼 올지 모르는 만큼 ‘수비 위주’의 경제 운용을 해야한다는 설명이다. MB 정부의 핵심 키워드인 감세 정책이 시작부터 좌초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공기업 민영화도 차질을 빚고 있다. 정부는 당초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의 통합안을 내놓았으나 한나라당이 금융 불안에 따라 중소기업의 자금 경색이 심화되고 있다는 이유로 반대해 사실상 물건너간 상태다. 2012년까지 산업은행의 정부 지분을 매각한다는 계획도 증시 침체와 자금 경색의 장기화로 연기될 전망이다. 최근 금융 쇼크의 주범으로 국제적 투자은행(IB)들이 지목되면서 금융 규제 완화 방안도 암초에 부딪쳤다. 야당은 내년 2월 시행 예정된 자본시장통합법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13일 정부가 발표한 금산분리 완화 방안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하고 있다. 이미 올 연말까지 마무리될 예정이던 외환자유화 조치는 전면 유보됐다. 이와 함께 새 정부의 주요 정책 과제 중 하나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도 난항이 예상된다. 금융 위기 후유증으로 미국이 국회 비준을 사실상 내년 하반기 이후로 미룬 상황에서 우리 국회의 비준 동의 작업 역시 늦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로 재정 정책의 수정도 불가피하다. 내년 예산안의 전제 조건인 5% 성장률 달성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감세 정책은 유지하면서 동시에 지출은 예정대로 집행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내년 국채 발행 등으로 재정확대정책을 고수하겠다고 하지만 그 결과 2012년 균형재정 달성이라는 중장기 전략은 사실상 물 건너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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