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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웅 휴먼칼럼] 이광요가 남긴 유산

미군 조종사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 미행정부는 1억달러(1,300억원)의 거금을 투자한다. 미 공군사관학교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입교한 사관생도가 4년후 졸업과 함께 소위(少尉)조종사로 임관하는데 드는 비용의 총액이다.같은 조종사지만 용감무쌍한 미 해군 항공모함의 전폭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는 미 공사가 아닌 해군사관학교(아나폴리스)에 입교해야 한다. 훈련은 공사보다 더 혹독하고 드는 비용 역시 더 많다. 혹독한 훈련과 최첨단 장비와 기술로 다져진 파이롯트들인 만큼 현역시절은 물론이고 군복을 벗고서도 제 값을 톡톡히 한다. 제대후 취직을 원할 경우 일반 항공사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하기 때문이다. 일반 대학 출신 조종사에 비해 비행경력이나 조종술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공사 출신 조종사를 환영하고 이들의 조종실력을 인정해 주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20여년 전 대한항공이 역개기 안전운항면에서 세계 최고의 명성을 날린데는 한국 공사출신 조종사들의 공적이 크게 작용했다. 여차할 경우 고장난 기체를 바다 모래밭이나 빙판위에 사뿐이 내려 놓는 대한항공 조종사들의 곡예에 세계 항공사들이 혀를 내두른 것이다. 같은 무렵 이웃 일본의 잇단 여객기 참사를 심층 취재한 미 시사주간지 타임의 보도 내용이 지금도 새롭다. 일항(日航)기의 참사가 빈발했던 주요 이유로 타임은 당시 일본 여객기 조종사들의 평균 연령이 35세였기 때문으로 지적했다. 35세되는 조종사의 비행경력이 어떨지는 불문가지다. 또 이들 대부분이 우리처럼 실전과 훈련을 다 겪은 공군출신이 아니라 민간출신 파이롯트가 이니면 공상(空上) 자위대 출신 조종사들로 거개가 전후 세대라는 점도 사고 빈발의 이유가 된다. 여객기 사고란 결국 훈련과 정비의 크기에 반비례한다는 산 교훈이다. 툭하면 사고를 내는 지금의 대한항공이 무엇보다도 유념해야할 사항이다. 더구나 IMF한파로 여행자가 표나게 줄고 있는 지금의 동아시아 항공업계 전체의 불황에 비추어 대한항공의 어깨는 더욱 무겁다. 필리핀 항공이 지난 9월 임시 폐업했고 인도네시아의 가루다 항공, 말레이시아 항공도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대만의 중화항공 역시 심한 자금난으로 주식 50%의 매각을 서두르고 있으며 홍콩의 캐세이 퍼시픽 항공(CPA)도 막대한 적자에 울고 있다. 유일한 예외가 싱가포르 항공이다. 타 항공사들이 여객 유치를 위해 요금할인과 친절봉사에 주력하는 동안 싱가포르 항공은 엉뚱한 대항무기를 골라냈다. 안전운항이 그것이다. 언뜻 지금의 경제한파와는 무관한 듯한 안전 운항을 고객 유치의 정검(正劍)으로 휘둘러 성공을 거둔 것이다. 더 높은 요금을 무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때 일수록 더더욱 안전한 항공사를 택한다는 여행객의 심리를 날렵하게 간파한 것이다. 경제난일 수록 고급 호텔의 식당이 메어지는 것과 흡사한 심리 파악이다. 이 회사는 현재 현금 보유고만 12억달러에 달한다. 지난해만 5억7,500만달러의 세후(稅後)순익을 올려 전년 대비 2%의 성장을 보였고 그 여세를 몰아 중화항공의 주식 25%를 3억달러에 매입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대표적인 예다. 그건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의 물새떼가 호수쪽이 아닌 폭포 떨어지는 곳에만 몰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고기들이 낙차의 충격으로 흰 배를 보이며 기절한 틈을 물새들은 높치지 않는다. 장사는 이렇게 해야 한다. 불황의 격류에 밀린 타 항공사들이 쉬 간과해 버린 안전운항을 이 항공사만은 기회로 삼은 것이다. 이야기는 싱가폴 항공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싱가포르 전체가 호황이다. 다른 아시아 국가 거개가 병상에 드러 눕는 동안 유독 싱가포르만이 부를 누리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계속 흑자 예산을 보여온 이 도시국가의 외환보유고는 지금 750억달러에 이른다. 외국 투자가들에게도 가장 매력적인 곳이다. 미국의 칼텍스사는 금명간 세계 총괄본부를 미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싱가포르로 이전할 계획이다. 결코 우연이나 횡재가 아니다. 그 정부에 그 항공사다. 훈련과 정비가 여객기 사고를 막듯 투명하고 깨끗한 정부만이 국난을 지켜준다. 업적은 그런 정부를 세운 리콴유(李光耀)전 수상에게 돌아간다. 지도자의 탁월성은 그의 퇴임 후, 더 정확히는 국난에 처할 때 나타나기 마련이다. 밤이 깊을 수록 별이 더 빛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는 완벽한 조종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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