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국내 문화 콘텐츠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중국 정부가 온라인 영상물 사전심의 규제를 4월부터 도입하면서 우리 콘텐츠의 중국 수출에 장애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국 네티즌들은 인터넷을 통해 한국 드라마를 사실상 시차 없이 내려 받아 봤지만 이것이 어려워진 것이다. 심의기간은 6개월가량 걸린다. 또한 정치적·정서적 이유로 심의당국인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이 퇴짜를 놓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의 온라인 규제 도입에는 한국 요인도 있다. TV·영화·출판물 등 대부분의 해외 콘텐츠는 중국 정부가 사전심의(검열)를 거쳤다. 하지만 새로운 유통망인 온라인에서는 아직 적용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등 중국인에게 선풍적 인기를 끈 빅히트 작품이 잇따르면서 온라인 규제가 강화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온라인사전심의제 도입으로 우리 콘텐츠의 중국 유입이 까다로워졌다"며 "새로운 공략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 업계와 정부의 과제"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 문화 콘텐츠 규제 강화=중국이 G2로 성장할 정도로 경제 규모가 커졌지만 문화산업 측면에서는 다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 2013년 기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3%로 미국에 이어 2위다. 반면 같은 기간 문화 콘텐츠 시장에서의 중국 비중은 7.9%로 일본(9.1%)에 이은 3위에 그쳤다.
이는 중국 내부의 사정과 관련이 있다. 사회주의 체제로서 정치적이거나 민족적·사회적으로 체제에 도전이 될 만한 사항은 철저하게 규제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국 콘텐츠는 물론이고 해외 콘텐츠도 예외가 아니다.
문화부·신문출판광전총국 등 각급 문화 담당 기구에서 해외 콘텐츠에 대해 검열을 진행한다. 이에 따라 문화 콘텐츠 수입도 제한적이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서 국가별 1위이지만 콘텐츠에서만 2위(13억1,000만달러)에 그치며 일본(14억6,000만달러ㆍ1위)에 뒤졌다. 같은 기간 콘텐츠 수입은 중국으로부터 1억7,000만달러, 일본에서는 1억3,000만달러를 각각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새로운 규제가 생겼다. 전 세계적으로 뜨고 있는 유통 채널인 온라인에 대한 규제다. 이전까지는 온라인 사업자가 자유롭게 해외 영상을 구입해 수익을 창출했는데 이러한 틈새에서 드라마 '별그대'가 히트를 친 것이다. 온라인 영상물 규제에 따라 해외 콘텐츠는 사전심의와 함께 공급하는 총 콘텐츠 양의 30% 이내로 제한된다.
중국의 규제는 양면적인 속성을 지닌다. 한국 등 해외로부터의 수입을 방해하는 것과 함께 자국의 문화산업 성장마저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콘텐츠 산업 규모가 중국 GDP의 1.4%에 불과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 경제성장과 함께 문화의 해외수출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내부규제로 인한 창의력 부족으로 글로벌 경쟁력은 크게 떨어진다. 중국판 '문화융성'인 '중국의 꿈(中國夢)'을 내세운 중국 정부의 딜레마인 셈이다. 한국의 콘텐츠 산업 비중은 3.6%다.
◇중공 창당 100주년 앞두고 문화산업에 총력=전문가들은 문화산업 성장을 내세운 중국의 딜레마를 돌파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선택한 것이 한국이라고 본다. 이웃한 나라이면서 유교·불교 문화 등 정서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중국당국은 20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앞두고 문화 측면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수치적으로는 2020년까지 문화산업 비중을 GDP의 5%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중국이 문화산업 분야에서 대폭 양보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이 문화산업에 대해 거의 대만과 홍콩의 수준으로 개방했다는 의미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중국 내 합작회사 설립을 가능하게 했고 저작권침해에 대한 보상청구권도 규정하는 등 저작권보호도 명문화했다. 영화 및 드라마 애니메이션 공동제작도 확대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거꾸로 중국 회사들이 국내 콘텐츠 기업에 대한 투자도 대폭 늘리고 있다. 지난해 중국 텐센트가 CJ게임즈에 5억달러를 투자하고 올해는 중국업체인 화처미디어가 한국회사인 팬엔터테인먼트와 공동투자한 드라마 '킬미, 힐미'가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방영된 것을 비롯해 중국 업체들의 국내 영화·드라마·게임업체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우리 기업 투자나 합작에 대해 우려보다는 적극적인 의미에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한국의 창의력·기획력, 기술을 중국의 자본·영업망과 연결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권익준 CJ E&M 중국미디어사업부 국장은 "중국인들과의 공동작업이 지금은 어렵긴 하지만 결국 이 시장이 세계로 나가는 활로가 될 것"이라며 "중국에 대해 비하도, 공포도 가질 필요가 없고 함께 만들어간다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성장을 적극 활용해야=중국 하면 국내 업체에 느껴지는 것은 짝퉁·규제·벼락부자 등이다. 이는 선진국으로 이어지는 과도기로서 한국도 이런 상황을 겪었다. 중국이 문화대국으로 나아가려는 이때 한국도 이를 활용하고 또 동참할 필요가 있다. 현재 대중국 수출의 대부분(83%)을 차지하고 있는 게임을 포함해 다른 분야에서도 적극적인 마케팅과 공동제작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문화는 그 자체로서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에도 막대한 파급효과를 미치고 있다. '별그대'가 인기를 끌면서 한국식 '치맥(치킨+맥주)'에 대한 인기가 급증하고 있고 한국 문화의 영향으로 휴대폰이나 자동차 판매도 늘었다. 이는 단순히 문화산업 수출입에 포함되지 않는 그 이상의 수확이다. 최대의 격전지인 중국 시장 선점은 곧바로 글로벌 시장 진출로 이어질 수 있다.
아직 중국 시장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짝퉁 등 불법유통의 범람과 함께 사회주의 정부의 엄격한 규제, 그리고 개발도상국 초기의 시장형성 미비다. 한국이 할리우드 등의 서구문화와 중국 문화 사이에 낀 넛크래커 신세가 될지 아니면 중국을 타고 세계에 한국 문화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지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강만석 한국콘텐츠진흥원 글로벌사업본부장은 "대중국 수출방식이 판권이나 포맷수출에서 나아가 현지화 마케팅을 강화해야 한다"며 "기업 차원에서 어려운 규제 측면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