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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얼마나 어렵냐고요? 사장이 한 달에 생활비 300만원을 못 가져가는 곳이 많아요”(류옥섭 경서주물공단 이사장)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일회성 해결책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야 해요”(이상훈 진흥주물 관리부장) 중소 주물 제조업계가 3일간 한시적으로 벌였던 납품중단이 소강상태를 맞은 11일. 50여 개의 주물업체가 밀집한 인천경서주물산업공단은 겉보기엔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 주물 제품을 가득 실은 트럭들은 먼지를 날리며 공장을 나서고, 생산직 근로자들은 시뻘건 전기불꽃이 튀고 검은 먼지가 날리는 작업장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납품중단 사태 이후 바뀐 건 아직 없다. 2대 째 경서주물공단을 지키고 있다는 한 주물업체 사장은 “전 아직 납품을 안 해요.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납품해도 남는 게 없는데요 뭐”라고 말했다. 납품중단 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긴 했지만, 아직 단가가 오른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이 지역 주물업체들은 지난 주말 납품중단 조치가 여론의 관심을 끌면서 협상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점은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고철가격 인상에 따른 고충은 하루이틀 된 것이 아니지만, 언론의 대대적인 관심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 지난해 10월 30개 수요처와 납품가 협상을 벌일 때만 해도 현대차 1곳을 제외하면 GM대우, 삼성중공업 등 대기업은 아예 대꾸조차 없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원자재 뿐 아니라 인건비, 환경부담금까지 한꺼번에 급등하면서 한계상황에 몰려있음을 강조했다. 양태식 대성주물 사장은 “4년 전 고철 파동은 몇몇 업체가 사재기한 탓에 고철 값만 올랐지만, 이번에는 제조비용 전체가 오른 데다 수급마저 여의치 않아 버티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일부 업체는 정부가 고철 사재기를 단속하겠다고 나섰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에선 사재기할 재고조차 없다고 코웃음을 쳤다. 이곳 업체들은 지난 8일부터 시작된 대기업과의 납품가 협상도 자신할 수는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장용환 부천주물 영업부장은 “국내 기업인 현대ㆍ기아차는 50원(kg당) 정도는 올려준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데, 외국계 기업인 대우차ㆍ쌍용차는 들은 체도 안 한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김유성 조일공업 대표도 “우리가 ‘힘들다’라고 하면 ‘문 닫은 곳 없지 않느냐’라는 대기업 구매팀장들의 인식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업체들은 이번 협상이 잘 풀려 대기업이 납품가격을 올려주더라도 원자재값이 다시 올랐을 때는 어떻게 대응할 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황종옥 대한금속공업 상무는 “원자재 값은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르는데, 지금처럼 큰 회사들이 지지부진 한 움직임을 보이면 결국 아무 소용이 없다”고 설명했다. 업계 스스로 안고 있는 걱정거리도 적지 않다. 이번 기회에 납품가격 결정구조를 아예 바로잡자는 일부 주장이 과연 관철될 수 있을 지 회의적인 것도 주물업계가 공급과잉 상태에서 출혈경쟁을 벌이는 산업구조이기 때문이다. 경서주물공단의 경우 입주한 50개 업체가 모두 조합에 가입돼 그나마 한 목소리를 냈지만, 이 상태가 앞으로도 지속될 지는 미지수다. 인근 김포지역에 산재한 영세한 주물공장은 조합에 속하지 않아 대기업들이 그 쪽으로 계약을 돌릴 수도 있지 않겠냐는 우려도 나온다. 1차 협상시한으로 정해둔 오는 15일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17일부터 2차 납품중단을 해야 할 지를 놓고도 업체간 이견이 크다. 직원 30~40명의 중간규모 업체들은 납품중단에 적극적이지만, 20명 이하의 영세업체들은 이를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한 소규모 업체 사장은 “적은 마진에 적은 양을 납품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상황인데, 납품중단이 길어지면 그대로 수입이 없다”고 난처해 했다. 대규모 업체는 다른 이유로 납품중단을 꺼리고 있다. 납품량이 많으면 마진폭이 적어도 수익을 남길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납품을 안 할 이유가 없다는 것. 이 지역 한 주물업체 사장은 “공단 내 최대업체 중 한 곳은 이번 납품중단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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