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건설 전문지인 컨스트럭션뉴스는 삼성건설 등 국내 7개 건설사가 시공에 참여하고 있는 길이 12.38㎞의 인천대교를 ‘경이로운 세계 10대 건설’ 중 하나로 꼽았다. 진도7 규모의 강진과 초속 72m의 태풍에도 견디며 100년 이상의 수명을 가진 이 다리의 기술력에 주목한 것이다. 천연가스에서 액화석유제품을 생산해내는 ‘GTL(Gas-to-Liquid)’은 석유화학 분야에서 유럽ㆍ일본 등에서도 극소수 업체가 독점해오던 첨단 기술이다. 그런데 카타르 라스라판산업단지 내 GTL 프로젝트의 핵심시설인 액화처리 시설 시공현장을 맡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현대건설이다. 한국 건설이 ‘기술’을 무기로 글로벌 건설시장을 향해 뛰고 있다. 지난 1965년 태국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시작으로 해외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후 ‘싼값’과 ‘부지런함’으로 대표되며 다국적 건설사의 하청업체로 치부되던 이미지에서 탈피해 축적된 기술력을 앞세워 유럽ㆍ일본 등 글로벌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위기를 넘어 글로벌 리더로 성장해가는 한국건설의 모습을 5회에 걸쳐 시리즈로 소개한다. 여름 휴가철로 접어들기 시작한 7월 초. 건설업체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며칠 건너 한번씩 대규모 플랜드 수주 계약을 발표했다. 지난해 말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로 촉발된 전세계적인 경제위기로 해외 플랜트 건설공사가 줄줄이 연기되는 상황에서 잇따라 터진 낭보였다. 공사 규모도 초대형이었다. 삼성엔지니어링ㆍ대림산업ㆍSK건설ㆍ현대건설ㆍGS건설 등이 중동ㆍ아프리카 등지에서 수주한 이들 사업 규모는 프로젝트당 각각 3조원 안팎에 달해 국내는 물론 해외 건설업계의 이목도 집중시켰다. 올 상반기 국내 건설업체의 해외건설 수주실적은 131억달러. 글로벌 경기침체의 여파로 지난해 상반기(259억달러)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수치다. 하지만 중동국가들이 그동안 지연해온 건설 프로젝트를 다시 발주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연말까지 수주 규모가 3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혜주 현대건설 두바이지사장은 “유가가 다시 오름세를 보이는데다 글로벌 경기침체도 회복세여서 UAE 아부다비ㆍ카타르 등을 중심으로 플랜트 사업 발주를 재개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고 전했다. ◇수출 한국의 캐시카우 ‘플랜트’=해외 플랜트 산업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일반인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한국플랜트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플랜트 시장 규모는 9,090억달러(약 1,112조원)로 그동안 한국 산업의 큰 형 노릇을 해왔던 조선업의 전체 규모가 1,000억달러(약 122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이보다 9배나 큰 시장이다. 특히 최대 플랜트 시장인 중동 지역은 국내 업체들이 수십년간 주력으로 삼아온 만큼 수주 경쟁력도 높다. 실제로 플랜트 산업을 포함한 해외건설 실적은 지난해 이미 조선업(410억달러)의 수출 물량을 추월했다. 자동차(350억달러), 반도체(328억달러) 등의 수출 규모도 웃도는 등 국가의 주요 성장동력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지난해 하반기 몰아닥친 금융위기 여파로 상반기 수주액은 전년에 비해 위축됐지만 하반기 전망은 매우 밝다. 현재 중동에서 발주가 예정돼 있는 물량은 수천억달러에 달한다. 세계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는데다 주요 산유국들이 경제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플랜트에 투자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이들 물량만으로도 일감은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종국 해외건설협회 중동팀장은 “지난해 경기가 꺾이면서 발주가 지연된 프로젝트가 많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업들이 하나둘씩 시장에 나오고 있다”며 “국내 건설업체들은 중동 쪽에서 평판이 좋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속적인 수주 확대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선진국도 인정한 기술력=중동에서 낭보가 잇따르고 있는 것은 한국 건설업체들의 기술 경쟁력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직 세계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재원을 보수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이 사업비 대비 기술경쟁력이 높은 한국에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팀장은 “중동 플랜트 시장에서 한국 업체들은 공사품질ㆍ가격 등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설계는 선진국이 하고 국내 업체는 시공만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한국 건설의 위상이 달라졌다. 국내 한 대형 건설업체의 관계자는 “시공은 이미 선진국을 넘어섰고 설계 기술도 90% 수준까지 따라갔다”고 말했다. 특히 설계ㆍ구매ㆍ시공을 통합적으로 수행하는 ‘EPC(Engineering, Procurement & Construction)’ 능력은 2005년 선진국의 70%에서 현재는 85% 수준까지 근접했다고 덧붙였다. 최근 주요 플랜트 투자처들이 조기 투자비 회수를 위해 공사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이른바 ‘패스트 트랙(Fast Track)’을 도입하고 있어 공정 관리에 차별화된 노하우를 가진 국내 업체들의 인기는 더욱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한국플랜트산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기술을 개발해도 시장에서 상업성을 인정받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플랜트 시공 분야는 우리 건설업체들의 경쟁력이 워낙 높다 보니 외국 업체들이 입찰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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