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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외식? 꿈도 못 꿨는데” 다섯살 딸에게 찾아온 변화[메디컬 인사이드]

■ 오석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크론병 치료 안 듣는 ‘유전성 장염’ 진단 플랫폼 구축

외래에서 복부초음파 활용해 실시간 장 내 상태 점검

IL10RA·XIAP 결핍증 신약 세계 첫 개발해 특허 출원

오석희(왼쪽)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외래진료실에서 초음파를 이용해 서경(가명) 양의 장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아산병원




“예전엔 밥 먹는 시간이 오히려 두려웠어요. 아이가 몇 숟갈 먹고는 금세 열이 오르고 설사를 하니 외식은 엄두도 내질 못했죠. 제대로 먹지도 못하던 아이와 종종 가족 외식을 갈 때면 지금도 꿈만 같아요. ”

8일 서울아산병원 신관 1층에 위치한 어린이병원에서 만난 서경(5·가명) 양의 엄마는 "외래에서 곧장 초음파로 아이의 장 상태를 확인해 주시니 ‘갑자기 입원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사라졌다"며 웃어 보였다.

서경이는 첫 돌 무렵부터 원인 모를 장염 증상이 반복됐다. 크론병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들었지만 약을 써도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기관 전체에 걸쳐 발생할 수 있는 만성 염증성 장질환이다. 궤양성 대장염과 달리 염증이 장의 모든 층을 침범하고 병변이 연속성 없이 드문드문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서경이는 2022년 초 서울아산병원 소아염증성장질환 클리닉에서 오석희 소아청소년과 교수를 만나고서야 정확한 병명을 알았다. 체내 염증 조절을 담당하는 ‘인터루킨-10 수용체 알파(IL-10RA)’ 결핍에 따른 유전성 장염이었던 것. 현재까지 국내에서 진단된 환자가 20명 남짓일 정도로 희귀한 유형이다. 오 교수와 만나 집중적인 치료를 받은 지 4년만에 염증으로 뒤덮였던 장과 항문 주변이 깨끗해지고 키, 몸무게도 또래 평균치에 가까워졌다.

◇소아 염증성 장질환 클리닉, 국내 유일 ‘유전성 장염’ 진단




서울아산병원은 1993년 국내 최초로 성인 궤양성 대장염 및 크론병 클리닉을 개설한 이래 염증성 장질환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소아청소년 염증성 장질환 환자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 크론병 환자의 체중증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엘리멘탈 다이어트(Elemental diet·완전성분 영양식이)'를 도입했고 2012년부터 염증성 장질환센터를 설립해 다학제 협진 체계를 가동 중이다. 소아청소년 환자 비중이 급증하며 조기 진단 및 집중적인 관리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2015년 소아 염증성 장질환 클리닉을 열었다.

매년 40~60명이 새롭게 진단을 받으면서 지난 20여년 간 서울아산병원을 거쳐간 소아청소년 환자는 2000명에 달한다. 치료 난이도가 높은 환자들이 몰리다 보니 가슴아픈 일도 벌어졌다. 유전성 장염에 대한 진단법이 정립조차 되지 않았던 시절, 제대로 손쓰지도 못한 채 10명에 가까운 환자를 떠나보내야 했던 것. 오 교수는 “사망률이 높은 간이식 사례를 수없이 마주하면서도 환자를 잃어본 적이 없었다”며 “크론병이 급속도로 진행돼 소장, 대장이 터지고 패혈증을 초래해 사망하는 케이스를 보면서 충격이 컸다”고 털어놨다. 10년 전 국내 유일의 유전성 장염 진단 플랫폼을 구축한 이유다. 오 교수는 “유전성 장염은 나이가 어린 영유아 시기에 주로 발견되는데 일반적인 크론병 치료에 전혀 반응하지 않고 전유전체 검사 결과만으로 확진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며 “실험실 수준의 면역검사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난 뒤 최종 확진을 검사 시스템을 운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소아 크론병, 합병증 위험 높아…키 성장도 저해


소아의 염증성 장질환은 궤양성 대장염보다 크론병이 더 흔하다. 두 질환 모두 발병 원인은 불분명하다. 유전적 감수성이 있는 환자에게서 환경적 요인으로 변형된 장내 미생물 불균형이 면역계의 비정상적 활성화를 초래해 장염을 발생시키고, 비정상적인 면역 기억이 형성돼 만성화를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국내 환자 수가 급증한 배경으로는 서구화된 식습관과 위생 수준 향상, 항생제 사용 증가 등이 꼽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염증성 장질환으로 내원한 소아청소년 환자는 2015년 4149명에서 2024년 7106명으로 10년새 2배 가까이 늘었다. 소아는 성인에 비해 염증성 장질환의 병변 범위가 넓고 중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유병기간이 긴 탓에 장손상이 누적되고 협착, 장 천공 등이 발생해 수술을 받아야 할 위험도 커진다.

오석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소아 염증성장질환의 조기진단 및 치료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아산병원


오 교수는 "염증이 충분히 조절되지 않고 체내 축적되면 영구적으로 키 성장이 저해될 수도 있다"며 "완치가 어려운 만성 질환인 만큼 정밀한 질병 활성도 평가와 맞춤 치료 전략을 통해 아이들의 삶의 질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증상을 개선시키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임상적 관해, 내시경적 점막 관해, 장벽 전층 관해의 3가지 목표에 도달하는 게 핵심이다.

◇ 내시경 대신 초음파로 장 내 상태 수시 평가…염증성 장질환 밀착 관리


서울아산병원은 초음파를 소아 염증성 장질환의 표준 진료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영유아 시기에는 내시경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을 통한 접근이 제한적이다. 검사 과정에서 협조가 어려워 마취를 하거나 진정제를 투여해야 하는데, 아이나 부모 모두 고통스럽다. 오 교수는 “질환의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고 적기에 정확하게 개입하려면 자주 점검해야 한다”며 “몇 년 전 유럽 학회에 참석했다가 소아의 복강 내 상황을 파악하는 데 초음파가 유용하다는 깨달음을 얻고는 사비를 털어 초음파 기기 1대를 들여놨다”고 했다. 통증 없이 장의 벽 두께, 혈류, 주변 림프절 등을 실시간 평가할 수 있으니 번거롭고 비싼 영상검사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치의가 외래진료를 보면서 환자의 장 내 상태를 면밀히 파악해 실시간 공유해주니 무엇보다 보호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오 교수는 최근 세계 최초로 유전성 장염의 일종인 IL10RA 결핍증과 XIAP 결핍증 치료제를 개발해 특허를 출원하고 등록을 앞두고 있다. 복부초음파의 유용성을 알리기 위해 핸즈온 교육도 시작했다. 그는 “살리지 못했던 아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잊지 않고 새로운 치료법 연구와 교육 활동에 매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가족 외식? 꿈도 못 꿨는데” 다섯살 딸에게 찾아온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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