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소득환류세제, 일명 사내유보금 과세는 지난해 7월 도입 발표 당시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내수경기 부양을 위해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을 경기의 마중물로 돌린다는 정책 목표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경영활동인 투자와 배당·임금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강제하려 한다는 비판과 함께 이중과세 논란이 불거졌다. 경기둔화로 매출이 줄고 미래를 위한 투자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경영환경에서 이중삼중의 족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서울경제신문이 한국거래소 산하 기업지배구조원에 의뢰해 코스피200 기업(3월 결산법인인 일양약품 제외)의 2014년 사업·감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전망과 우려는 대체로 틀리지 않았다.
기업 대부분이 과세의 칼날을 피했지만 17%인 34개 기업은 추가로 총 1,696억원의 과세 부담을 져야 했다. 현대모비스 297억원, 제일모직 167억원, SK 123억원, 네이버 111억원 등 100억원 이상을 부담해야 하는 코스피200 기업도 6개나 됐다. 업종별로 보면 내수 비중이 높은 건설·금융 업종의 타격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몇 년간의 내수경기 침체 여파로 실적부진에다 과세의 부담까지 떠안아야 하는 셈이다. 건설·건설자재 업종에서는 대우건설(75억3,900만원), 현대건설(42억8,500만원), 삼성물산(13억4,500만원), 쌍용양회(22억3,800만원), 한일시멘트(9억원) 등이 과세 대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 업종에서는 삼성카드(89억원), BS금융지주(48억원), 미래에셋증권(15억원) 등이 포함됐다.
우량 중견기업 상당수도 과세 대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자동차부품 업체인 서연(153억원)과 디와이(44억4,700만원), 주류회사인 무학(23억2,700만원) 등이 기업규모에 비해 적지 않은 과세폭탄을 맞을 것으로 분석됐다. 디와이의 경우 당기순이익(314억원)의 무려 15%를 사내유보금 과세로 물어야 했다. 실제 과세는 올해 이후 사업연도(2015~2017년) 실적과 이에 따른 기업들의 투자·배당·임금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들의 투자는 짧게는 몇 년, 길게는 5~10년 단위의 중장기 계획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투자를 하지 않던 기업이 갑자기 투자를 늘리기는 어렵다. 임금도 한번 올리면 줄이기 어렵다는 점에서 인상하기가 쉽지 않고 그 폭도 크지 않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손쉬운 배당을 선택해 사내유보금 과세를 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코스피200 기업의 전년 대비 현금 배당액은 평균 111억8,000만원 증가했다. 161개사가 전년 대비 배당을 늘렸으며 배당이 가장 많이 증가한 기업은 삼성전자로 무려 8,430억원이 늘었다. 사내유보금 과세 부담이 없는 기업들은 과세 부담을 져야 하는 기업들에 비해 투자는 5.2배, 배당은 2.5배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들이 배당, 자사주 소각 등을 통해 사내유보금을 소진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과세 대상 기업들도 대부분 투자 포함 방식(A타입)보다 투자 제외 방식(B타입)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사내유보금 과세 대상은 투자나 배당 여력은 없는데 현금 등 유동자산이 많아 부채 비율이 낮은 기업들이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인다. 주로 중견 우량기업이 이에 해당된다.
기업규모와 당기순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투자나 배당·임금 증가분만으로 추가 과세가 이뤄지게 됨에 따라 과세 대상 기업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전망된다. 건설 업종의 경우 당기순이익이 더 적은 대우건설이 현대건설이나 삼성물산보다 더 많은 세금을 물어야 한다. 사내유보금 과세 방식에도 문제가 제기된다. 오덕교 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투자나 배당은 해당 사업연도에 벌어들인 당기순이익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임금은 (직전 3년 평균임금 대비) 급여 증가액을 사용하도록 해 직원 급여 인상에 인색할 우려가 있다"며 "급여 증가액보다 총급여액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