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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는 금융산업 전반이 힘든 시기였지만 삼성 금융계열사는 유달리 외풍에 시달렸다. 박근희 전 삼성생명 부회장을 비롯한 금융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물갈이됐고 이 와중에 경영여건 전반에 크고 작은 변수들이 두더지처럼 튀어나왔다.
금융계열사의 맏형이라 할 수 있는 삼성생명은 장기간 계속된 저금리 체제에 힘들어했고 삼성화재는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손해율이 끝까지 괴롭혔다. 삼성카드는 전년부터 이어진 '포퓰리즘 입법' 속에서 수수료율 인하 압박이 거듭되면서 수익구조에 압박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복합할부 문제까지 터지면서 위기감은 더해갔다. 삼성증권 역시 증권업 전반이 최악의 상황과 마주하면서 힘겨워했다.
기우였던가. 아니면 위기일수록 '관리의 삼성'이라는 저력이 빛을 발한 것일까.
30일 금융계에 따르면 삼성 금융사들의 지난해 한 해 실적을 비교분석한 결과 삼성생명과 화재·증권·카드 등 이른바 '4인방'의 실적이 금융업 전반의 고전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폭 호전된 순익 기록을 세운 것으로 나타났다.
순익 급증이 상당 부분 계열사 지분처분 등에 따른 일회성 요인에 기인했다는 점에서 '불안한 축배'라는 분석도 있지만 영업이익 역시 크게 늘었다는 점에서 저력이 발휘된 것은 분명하다.
삼성생명은 경우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1조3,610억원을 기록해 전년보다 49%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이익 역시 52%나 증가한 1조4,272억원에 달했다. 순익뿐만 아니라 외형 역시 성장해 지난해 말 현재 총자산은 214조원으로 전년보다 11%(21조원)나 늘었다.
삼성화재의 실적 또한 뛰어났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8,412억원으로 직전 회계연도보다 63.3%나 늘었고 매출은 20조9,891억원으로 34.2%나 올라갔다.
삼성증권은 지난해 성적표가 대폭 개선되면서 이날 5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성과급(PS)을 받기도 했다. 직원마다 연봉의 13~14%씩 받아갔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667억원으로 전년 대비 흑자로 돌아섰고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은 3조1,021억원, 2,294억원으로 각각 46.6%, 1,979.2% 급증했다.
당기순이익의 경우 자산운용 지분매각에 따른 일회성 요인이 결정적이었다고 하지만 영업이익의 흑자전환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삼성카드 역시 지난해 매출액 3조5,218억원, 영업이익 8,653억원, 당기순이익 6,560억원을 기록해 각각 23.7%, 139.7%, 140.1%씩 올라갔다. 그룹 계열사 간 지배구조 개편에 따른 보유주식 매각으로 일회성 요인이 작용하기는 했지만 험난한 환경 속에서 선방 수준을 넘어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고 볼 수 있다.
금융가에서는 삼성의 이 같은 실적 호전의 가장 큰 원인을 '적시의 구조조정'에서 찾고 있다. 구조조정의 가장 큰 원칙이 '타이밍'이라고 볼 때 저금리와 업황 부진의 시기에 과감한 구조조정을 한 것이 주효했다는 뜻이다. 삼성 금융계열사들은 지난해 사별로 최소 수백명의 간부급 인원을 내보냈고 지난해 말 인사에서는 실적 호전 속에서도 승진임원을 20%가량 줄였다.
물론 '삼성의 저력'은 적어도 금융사에서만큼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개중에서도 지적되는 부분이 자산운용능력이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삼성 금융사가 진정으로 힘을 발휘하려면 세계적 수준의 자산운용능력을 키워야 한다"며 "단시일 내에 힘을 키우려면 현실적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는 자산운용사를 인수하든지 적어도 확실한 자산운용가를 영입하는 전략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지난해 당국이 해외에서만큼은 사실상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인수)'를 용인한 만큼 해외 무대에서 보다 굵직한 금융사를 인수하는 작업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런 전제조건들이 깔리지 않으면 '금융의 삼성전자'가 삼성 금융사에서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삼성 내부인사들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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