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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5년의 功過
입력2003-02-23 00:00:00
수정
2003.02.23 00:00:00
조의준 기자
김대중 정부가 내일로 5년 임기를 마무리하고 역사 속으로 넘어가게 된다. 김대중 정부 5년을 되돌아 보면 IMF체제의 극복, 햇볕정책과 남북정상회담, 월드컵축구 4강신화와 같은 밝은 면과 함께 160조원의 공적자금, 대북송금사건, 김대통령의 두 아들의 구속이라는 어두운 면이 겹친다.
김대중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라는 경제위기 속에서 출범했다. 국가적인 위기 사태는 국민적 단합을 용이하게 한다. 한국은 이 같은 국민적 단합을 바탕으로 IMF체제 2년8개월만인 2000년8월 경제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는 최단시간 안에 IMF체제를 극복한 사례이자 김대중 정부의 최대 치적으로 꼽힌다.
그러나 IMF체제 졸업은 160조원에 이르는 공적자금의 투입에 힘입은 바 크다. 공적자금 투입은 나라 빚을 후대에 넘기는 행위다. 규모가 적정했는지, 집행이 공정했는지는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검증돼야 할 일이다.
김대중 정부의 성과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2001년 6.15 남북정상회담이다. 분단 반세기 만에 처음이었던 이 만남을 계기로 남북간의 교류와 협력은 상당부분 제도의 틀 속으로 들어왔다. 해로로 시작된 금강산 관광이 육로로 발전됐고, 남북철도가 연결된 것은 남북정상회담의 상징적인 성과다.
남북정상회담은 김대통령이 취임이후 줄기차게 추진해온 햇볕정책의 소산이다. 햇볕정책은 재임 중 줄곧 논란의 대상이 돼 왔고, 대북송금사건과 관련해 퇴임 후에도 김대통령을 증언대에 세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북한체제의 폐쇄성에 비추어 그들을 대화의 테이블로 이끌어 내는데 변칙적인 방법이라도 써야 했을 것이라는 점은 많은 국민이 수긍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턴 남북교류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도 남북관계는 투명해져야 한다는 국민적인 요구가 강해지고 있다. 김대통령이 이 부분에 대한 매듭을 짓지 못하고 퇴임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김대중 정부는 인재 풀이 협소한 데다 과거 30년 영남정권의 인사편중을 시정한다는 반사심리의 영향으로 임기 내내 공직인사에서 호남편중 시비에 휘말렸다. 이와 함께 두 아들이 비리에 연루돼 구속되는 사태로 인해 그의 치적은 결정적으로 퇴색되고 말았다. 이는 전임 김영삼 대통령의 전철을 고스란히 되 밟은 것으로 그가 역사로부터 전혀 교훈을 받지 못한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처럼 김대중정부 5년은 음과 양이 엇갈리고, 이에 대한 평가는 어차피 역사에 맡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야당 정치인시절 목숨을 걸고 독재에 항거했고, 4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돼 민족화해의 길에 그가 남긴 큰 족적은 그가 수상한 노벨평화상과 함께 국민적 자산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긴 정치의 역정을 마치고 범인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는 김대중대통령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빈다.
<이진우,조의준기자 joyjun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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