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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세계적인 풍력발전기 제조사 베스타스가 위치한 유틀란드 반도까지 가는 길 내내 기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녹색 들판에 줄지어 서 있는 흰 풍력발전기였다. 천천히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단순한 구조물은 신재생에너지 강국의 위상을 웅변하는 거대한 '오브제'였다. 덴마크는 전체 전력 소비량의 4분의1을 바람에서 뽑아내는 풍력 강국이다. 덴마크 정부는 지난 2010년 기준 전체 전력의 24%를 차지하는 풍력에너지 비중을 오는 2020년까지 42%로 끌어올린다는 목표에 도전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대한 의지와 열정은 덴마크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신재생에너지 전쟁이 한창이다. 제조업 비중이 높아 전력수요가 많은 독일마저 원전 폐쇄를 결정하고 2050년까지 100% 신재생에너지를 쓰겠다고 선언했다. 최근에는 국민투표를 통해 원전 재도입 계획이 무산된 이탈리아도 신재생에너지에 힘을 쏟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덴마크가 풍력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데는 세계 풍력 발전기 점유율 1위인 베스타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코펜하겐에서 차로 약 4시간 거리에 위치한 베스타스 본사는 연구개발(R&D) 인력만도 약 800명에 달하는 거대한 연구소다. 베스타스는 1979년 세계 첫 풍력발전기를 만들어낸 후 지금은 전세계 풍력발전기의 20% 이상을 공급하는 글로벌 에너지 메이저로 우뚝 섰다. 올해 예상 매출규모는 70억유로(10조원)가 넘는다. 베스타스는 3㎿급 풍력발전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현실에서 이미 6㎿짜리 발전기를 개발해 주문제작하고 있을 정도로 높은 기술력을 인정 받고 있다. 초속 3~4m의 바람에도 돌릴 수 있는 고성능 발전기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베스타스 본사에서 만난 연구진이 한결같이 강조한 것은 발전기 자체의 성능보다는 어디에, 어떤 발전기를 설치하고,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즉 하드웨어뿐 아니라 솔루션을 제공하는 노하우가 풍력발전의 성패를 결정한다는 것. 석유 메이저들이 석유 매장량을 꿰뚫고 있듯이 베스타스는 전세계 바람의 흐름을 현미경 보듯 관찰하고 있다. 그들은 이를 '바람 지도'라고 부른다. 피터 벤즐 크루제 베스타스 홍보담당 부사장은 "지구를 10㎞ 단위로 쪼개 바람의 양을 파악하고 있다"며 "우리는 전세계 국가, 심지어 한국 내에서도 풍력발전소 적지가 어디인지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덴마크가 전기 생산만큼 힘을 쏟고 있는 분야는 '스마트 그리드'다. 이를 위해 덴마크는 유럽 국가들과 손잡고 코펜하겐에서 50㎞가량 떨어진 '본홀름(Bonholm)'섬에서 새로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인구 5만명인 이 섬에는 에너지 생산과 소비를 유기적으로 연결해주는 스마트 그리드 덕택에 신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이 50%에 달한다. 신재생 기술업체인 에너지넷의 한스 모겐센 부사장은 "본홀름은 '2020년의 덴마크'인 동시에 40~50년 뒤 유럽연합(EU)의 미래상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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